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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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영원한 밤
글쓴이
김인숙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9.3 (11)
지니





말하자면 '나도 죽을 뻔했었다'
기묘한 오역
. 그렇더라도 그녀는 그 오역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데, 자신
역시 그랬던 때가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시 못 빠져나올 어딘가에, 아주 깊은 우물 같은 곳에 풍덩 빠뜨려버리고 싶었던 때. 그리고
그걸 끝까지 쳐다보고 싶었던 때
. 문득문득 죽고 싶었던 때. 그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때
. 죽고 싶은, 죽어가는.... 그러나 살아가는, 살아 있는,
잘도 살아 있는.    p.75



여든일곱의 델마와 여든아홉의 루이스, 무려 아흔에 가까운 나이의 자매가
가출을 한다
. 늙은 자매는 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자세로
앉아
, 똑같이 앞니가 빠져 있는 얼굴로 똑같이 미소를 지어 자식들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곤 했다. 새벽마다 불도 안 켜고 거실 소파에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귀신 같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살던 델마의 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델마가 살고 있는 그녀의 아들네 집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어느 날, 늙은 두 자매는 집을 떠나 바다로 향한다. 델마와 루이스라는 이름에서 자연스레 동명의 영화가 떠오르지만,
소설에서는 두 주인공을 노인으로 설정해 유쾌하지만 뭉클한 노년의 일탈을 그리고 있다
. 아마도 이 여정은
두 자매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 이제 그들은 자식들에게 추가되어 할증료를 내야 하는 수하물처럼
느껴지는 존재였고
, 사실 여든이 넘어 가면서부터는 늙는다기보다 소멸해간다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오래 전에 봤던 그 영화 속에서 두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던가. 어떻게
되었더라도 늙은 두 노인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



사실 영원히 내 곁에서 나를 챙겨주고,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존재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늙어간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생각보다 더 서글프다
. 그러니까 하늘과 땅만큼이나
서로 멀리 있어 접점이 없어 보이던 죽음과 삶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눈에 선연히 보이는 그런 순간 말이다
. 한없이 커 보였던 부모의 등이 생각보다 왜소하고, 작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 우리는 그제야 어른이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 이 책 속
<델미와 루이스>에 등장하는 두
자매의 모습이 흥미롭게 읽혔다
. 이 정도 나이의 노인이란 일상에서 매번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 일반화된 시선일 텐데
, 이들 두 자매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즐거운 일도, 새로운 일도 없을 것처럼 보였던 삶이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언제, 어떤 모습으로든 달라질 수 있다.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

 





그곳에서 어두운 거리를 내다보았다. 외진 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바라보는 밤의 거리는 자동차 불빛으로만 빛났다
. 모두들 집으로 돌아오는 불빛이었다. 생의 모든 고난들이, 사소한 말썽들이, 해소되지 못한 불만과 욕구들이 차근차근 집으로들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과 거실과 욕실과 옷장과 신발장과 찬장 속에
, 재활용 박스와 쓰레기봉투 속에 차곡차곡 쌓이거나 쟁여지기
위해
.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의 스위트 홈으로.   p.191



오래 전 김인숙의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해가며 여러 번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책을 만나도 두 번 이상 읽을 만한 시간이 없지만, 그때는
손때가 타서 색이 바랠 때까지 열심히 읽었다
. 예리한 묘사들과 섬세한 문장들, 그리고 생의 이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시선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정도로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 십여 년의 시간 동안 함께 해왔던 작가이기에, 이렇게 신작을
만날 때마다 묘한 감상에 젖어 들곤 하는 것 같다
. 더구나 이번 소설집에서는 <델마와 루이스>
<
토기박물관>에 등장하는 노년층 여성들 때문에 더욱 그 시간의 파도가 와 닿았던
것 같다
. 그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들이 자신에게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나가는 것, 흘러가는 것, 거기
멈춰 있는 것
. 그래서 참 좋은 것 같다. 작가가 살아내는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서 작가가 계속 앞으로 가며 글을 쓰고
, 독자들이 그 시간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도 평범한 삶을 살아서 그저 오늘이 내일과 같고,
다음 날 역시 비슷한 일상으로 반복되며 살아 간다
. '한 번도 눈에 띄지 못한 삶,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삶. 소리 없이 조용히, 영원히 그럴 것 같은 삶.'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에서처럼 말이다. 실패조차, 슬픔조차, 쓸쓸함조차
너무 별 볼 일 없어서
, 산불 하나 본 게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는 그,
자신이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K, 그리고 몸에서 전기가 난다는 배터리맨까지... 세상에 히어로 같은 게 어디 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얘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 사실 마음 한 켠으로는 그런 히어로를 믿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아주 사소한 히어로, 세상을 구원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구원할 필요가 없는
' 히어로라도 말이다. 캡틴
아메리카
, 아이언맨과는 견줄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사소한
히어로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 평범하고 사소해서 비루하기까지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뭔가를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 김인숙의 소설들은 종종 이렇다. 너무도 현실적이라 고개를 돌리고 싶게 만들다가도, 이제 이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희망을 남겨주곤 한다
.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해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겠지만
, 그럼에도 나에게만 특별한, 비밀스러운 깨달음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생을 살아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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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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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는엄마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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