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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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글쓴이
헨드릭 하멜 저/김태진 역
서해문집
평균
별점8.9 (37)
유정맘

작은아이의 여름방학 숙제로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하는데, 아이가 네덜란드에 가 보고 싶다고 해서 네덜란드를 검색하다 안네와 하멜을 발견했다. 하멜을 네덜란드에 한국을 소개해준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냥 여행으로 다녀간 게 아니라 13년 동안 한국 아니 조선에 억류되었다고 한다. ‘쇄국정책이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들어온 사람은 반기지만 나갈 수 없었다니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해풍이라는 아이를 등장시켜 하멜과의 만남을 만든 김남중님의 나는 바람이다를 읽고 하멜에 대해서 궁금했다.


(리뷰: 해풍이의 모험 ‘나는 바람이다 1 빨간 수염 사나이 하멜’ 해풍이의 모험 ‘나는 바람이다 2 나가사키에 부는 바람’)


 


그러다 만난 서해문집의 하멜표류기. 제목만 봐서는 무슨 아동용 모험기 같은데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탈출해 네덜란드로 돌아간 다음에 쓴 기록이며 보고서였고 이 보고서의 목적은 조선에 억류된 기간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한 거였고, 원래 제목은 야하트 선 데 스페르베르 호의 생존 선원들이 코레왕국(조선)의 지배하에 있던 켈파르트 섬(제주도)에서 1653 8 16일 난파당한 후 1666 9 14일 그 중 8명이 일본의 나가사키로 탈출할 때까지 겪었던 일 및 조선 백성의 관습과 국토의 상황에 관해서-네덜란드령 인도총독, 요한 마짜이케르 각하 및 형의원 제위 귀하로 무척 길다.


 


하멜표류기는 여러 판본들이 있는데, 불어본에 입각한 한글판은 1930년대에 출판되었고 1954년에 이병도의 하멜표류기가 재판되었는데 한국과 일본의 자료를 보충한 것이라고 한다. 141페이지로 얇지만 내용이 꽤 알차다. ('나는 바람이다'에 무척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어서 17세기 조선의 모습을 다시 보는 시간이었다)


 



왼쪽 그림은 스페르베르 호 항로, 오른쪽 그림은  1596년의 일본 지도로 한국의 모습이 보인다.


 


하멜일지와 조선국에 관한 기술로 나뉘어 있고, 하멜일지는 제주도로 오게 된 경위와 조난당해서부터 나가사키로 탈출할 때까지 조선에서 일어난 일을 쓴 기록이고, 조선국에 관한 기술에는 조선 백성의 관습과 생활상 그리고, 조선 왕조에 관해서 쓴 기록으로 지리적 위치부터 군사 경제 교육 등 하멜이 본 조선의 모습이 자세히 담겨져있다.


 


바타비아 (인도네시아)를 떠나 타이완을 거쳐 일본을 가능 항해 도중 날씨가 나빠져 표류하던 중 육지에 도착하지만 거친 파도와 심한 바람 때문에 배가 부서지고 부상자들도 생긴다. 아름다운 배는 산산조각 나고 64명의 선원 중 36명만이 살아남았다. 100명 정도의 무장한 사람들이 그들의 인원수를 조사하고 감시했고 다음 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사람들을 나누어 데려가 조사를 시작했다. 일등항해사는 관측을 하고 이곳이 켈파트르 (제주도)’섬이라는 걸 알아냈고, 사람들은 하루 두 차례 음식을 갖다 주고 조사를 하고 감시를 했다. 그곳으로 네덜란드 사람이지만 거의 한국인이 된 얀 얀스 벨테브레가 찾아왔고 왕은 (효종)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당신을 보호해 주겠으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제공해줄 테니 이 나라에서 여생을 마치라라고 그의 귀환을 거절했으며 하멜 일행 또한 여기에서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서울로 와 왕과 대면하고,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거절당하고 친위병으로 지낸다.


 


청나라 칙사에게 그들의 일을 알리고 도망치려 하는 일이 발각되어 그들은 전라도에 유배되어 목숨은 구하지만 절도사에 따라 쌀은 지급하지만 땔나무를 직접 구하고 군청의 잡초도 뽑고 청소도 한다. 기근이 심해지자 22명은 여수, 순천, 남원으로 분산되어 힘들게 지내고 그러다 힘들게 배를 구하여 탈출한다.


 


나가사키로 가던 중 고토섬에 도착하여 엄중한 감시를 받았지만 무사히 나가사키 항에 도착하고 바로 네덜란드로 갈 줄 알았으나 나가사키 총독은 그들을 데지마 섬에 데리고 가 일년 더 있도록 한다.


'나가사키 총독이 한 질문과 이름을 밝힌 우리들이 대답한 답변' 내용은 하멜 일행이 조선에 가게 된 경위와 더불어 조선에 대해 궁금한 총독의 질문이 많이 들어있다. 하멜 일행은 데지마에서 1년 이상 지내며 음식과 옷 대접을 잘 받았지만 답답해한다. 드디어 1667년 10월 25일 그들은 스프리우프 호에 승선하여 바타비아에 도착했다가 하멜은 남고 나머지 7명은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탈출하지 못한 7명은 동래에 있는 일본의 무역기지를 거쳐 조선을 출발하여 악천후로 1년만에 나가사키에 도착하고 (아마도 바타비아에서 만난) 하멜과 함께 네덜란드로 가고 계산 된 밀린 급여를 받는다. 하멜의 귀환 후 조선과 통상을 트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일본이나 중국 정부가 반대했을 거라는 추측만 남는다.


 


조선국에 관한 기술 중 '문자와 인쇄'가 눈에 띄는데 문자를 쓰는 데 세 가지 다른 방식이 있고, 첫 번째 것은 주로 쓰는 방식인데 중국와 일본의 글자와 같고 공식문서와 모든 책들이 이렇게 인쇄되었고, 두 번재 것은 네덜란드 필기체처럼 매우 빨리 쓰는 문자인데 포고령이나 청원서, 편지를 쓸 때 사용하고, 세 번째 것은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배우기 쉽고 어떤 사물이든지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역시 한글의 힘은 위대하다.


 


만약 17세기 조선의 선조들이 낯선 네덜란드인들 36명이라는 집단을 적절하게 응대하고 잘 활용했더라면 서양 문명의 발달을 일찍 수용할 수 있을 것이요, 조선의 개화도 더 빨리 이뤄졌을 것이 아닌가! 그랬더라면 일제 침략도 지배도, 그리고 남북분단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역자의 말에 나 또한 그 당시의 관습과 대응에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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