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리뷰

달빛망아지
- 작성일
- 2020.5.9
동물농장
- 글쓴이
- 조지 오웰 저
열린책들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샀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tv프로그램에서 <동물농장>을 조명해줌으로써 2년 넘게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이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국내 번역판들 중 이 책을 선택한 건 분명 도입부의 번역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냥 <동물농장>을 쓴 소설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조지 오웰이었다.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또 어떤 글을 썼는지 그에 관해서는 명성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나인데 요 몇 달 사이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어쩌다 이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되었는지.
열린책들에서 낸 이 번역판은 국내에서 조지 오웰 전문번역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박경서 교수의 해석이 돋보이는 책이기에 다른 출판사의 번역판과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다.
조금씩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번역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 책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다.
소와다리 출판사가 초판본에 가장 가까운 디자인과 영어 원문을 수록하여 차별화를 두었다면 이 책은 조지 오웰이 우크라이나판 출간을 기념해 우크라이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히 작성한 서문을 실었다. 거기에 역자 해설이 더해진데다가 생전의 오웰이 추구했던 문학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을 수록해 독자로 하여금 <동물농장>이라는 하나의 작품에 대한 이해에만 한정하지 않고 보다 포괄적인 차원으로의 사고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전에 쓴 소와다리 출판사에서 나온 <동물농장> 리뷰에서 이솝 우화만큼이나 유명한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했지만 새로운 번역으로 세 번을 읽고 나니 내용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 않고 리뷰를 쓴다는 것이 어불성설로 여겨진다.
우선 이 책의 특장점이기도 한 오웰의 에세이 중 한 부분을 짚고 가야겠다. 두 책의 번역을 비교한 것은 오웰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좌파정부는 항상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약속한 번영이 성취 가능할 때조차도 불안한 과도기는 어쩔 수 없이 있게 마련인데 좌파 정부는 이것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경제적 곤궁에 빠져 있는 우리 정부는 과거의 정치 선전으로 사실상 자가당착에 빠져 버린 것 같다. 중략. 그렇다면 작가의 임무란 <정치를 멀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물론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지금 같은 시대에 이성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진정 정치를 멀리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솔직히 내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우리는 정치적 충성과 문학적 충성을 현재보다 더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내키진 않지만 할 일을 한다는 의지가 있다고 해서 그 일에 동반되는 신념까지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중략. 정치란 것이 얼마나 더럽고 비열한 사업인지를 알고 있지만, 그것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모든 선택, 심지어 모든 정치적 선택조차도 선과 악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고, 만약 어느 하나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무조건 옳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유치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치에서 두 개의 악 가운데 어떤 것이 덜 악한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뿐이며 그 이상의 것은 결코 할 수 없다." (동물농장/열린책들/박경서 역)
"좌파 정부들은 거의 예외없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자신들이 공약했던 번영을 이루게 됐을 때에도 불편한 이행기간이 늘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이행 기간에 대해서 사전에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절망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결과적으로 과거에 펼쳤던 선동에 맞서 싸우는 정부를 보고 있다. 중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와 거리를 두는 것이' 모든 작가들의 의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이미 앞에서 말했듯 오늘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와 거리를 둘 수도 없고 두어서도 안 된다. 나는 정치적 충성과 문학적 충성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지금의 방식보다 더 선명한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그리고 마음에는 안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을 기꺼이 한다고 해서 대체적으로 그런 일에 따르는 신념까지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자고 제안할 뿐이다. 중략. 우리는 이 딜레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동시에 정치가 무척이나 지저분하고 품격을 낮추는 일이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대부분은 모든 선택이 심지어 모든 정치적 선택조차 선과 악 사이에서의 선택일 수밖에 없고, 또한 필요한 것은 옳은 것이라는 오래 이어져 온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아원의 아이들이나 믿을 이러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치에서는 두 악 중에서 그나마 덜 악한 것을 결정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고, 악마나 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간신히 벗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책 대 담배/민음사/강문순 역)
이 에세이는 1948년에 쓰여졌다. 만약 이 글의 끝에 쓰여진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분석한 것이라 해도 믿을 것만 같아 나는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어 소설에서 느낀 바를 몇 가지 나열하자면 농장에서 정치 선동을 맡고 있는 스퀼러가 그의 지도자인 나폴레옹이 스노볼의 풍차 건설 아이디어를 가로챈 데 대해 어려운 단어를 들먹이며 무지한 동물들을 설득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어느 영화(아마도 '빅쇼트')에서 본 '법률 용어와 경제 용어가 어렵게 쓰여진 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야.'라던 대사가 생각나 씁쓸했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간의 첫 전투였던 '외양간 전투'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전투에 임함으로써 '1급동물영웅 훈장'까지 받았던 스노볼에 대해 나폴레옹 무리들의 은근하고 지속적인 중상과 모략이 힘을 발휘하며 실제로 있었던 일조차 없었던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오웰의 다음 작품인 <1984>에 나온다던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까지 지배한다."라는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두어 가지 의문을 남겼다.
대부분의 역자들이 '냉소적인 지식인'을 지칭한다고 하는 당나귀 벤저민의 주요대사인 "당나귀는 오래 살지. 너희들 중 아무도 죽은 당나귀를 본 적이 없어."라는 대사에 내포된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과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면 다시 정복당할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주장과 '반란이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면 자체방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스노볼의 주장은 어느 쪽이 옳은가를 두고 독자들이 고민해 보라고 던져 준 질문이기도 한 것인지 아니면 그 둘 사이의 옳고 그름 따위는 전혀 무의미한, 단순히 스노볼과 나폴레옹 간의 갈등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였던 것인지 하는 것이다.
거듭해 읽을수록 지금껏 살아오며 막연히 품게 된 사회구조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깊어지게 하는 소설이다. 아마도 한동안은 조지 오웰의 사유를 쫓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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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