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애제자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는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가 창시한 조선 남종화를 계승한 화인(畵人)이다.

그는 “27세 때인 1835년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를 찾아가 서화를 배우기 시작1)다. 했는데, 선사(禪師)의 소개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5~1856)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된다.

“이후 소치 허련은 추사가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되었고,
추사를 가장 극진히 모신 제자도 허련이었다.2)” 이는 그가 1840년 김정희가 재논의된 ‘윤상도(尹尙度, 1768~1840) 흉소(凶疏)’ 사건으로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하게 되자,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위험을 무릅쓰고 1841년, 1843년, 1847년 세 차례나 찾아가서 몇 개월씩 머물렀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치 허련의 화풍(畵風)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부족하다는 혹평(酷評)3)을 들은 우봉(又峯) 조희룡(趙熙龍, 1789~1866)과는 달리 허련은 스승 김정희로부터 “압록강 이동(以東)에 소치(小癡)만 한 화가가 없다4)”는 극찬을 들었다.

도대체 허련의 작품이 어떻기에 이런 극찬을 받았을까? 

유홍준 교수는 “허련의 작품은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한결같이 고답적(高踏的)인 문인화풍으로
일관하고 있어 추사가 극찬할 정도의 화격(畵格)을 보여주는 드물고 말년에는 먹을 너무 짙게 사용한 흠이 있다. 다만
갈필(渴筆)과 담묵(淡墨)이 지닌 특징을 살려낸 몇몇 작품에서는 추사의 제자다운 고담(枯淡)한 멋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치 허련의 산수화 중 <죽수소정도(竹樹小亭圖)>,
<방 완당 필의 산수도(倣 阮堂 筆意 山水圖)>는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본떠
그린 작품으로 구도와 필치에 소담한 멋이 들어 있다. <방 석도 산수도(倣 石濤 山水圖)>는 추사가 극찬한 작품으로 갈필(渴筆)의 맛이 잘 살아
있다.5)”

즉, 허련이 몇몇
수작(秀作)을 남겼지만 대부분 범작(凡作)을 그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곧 김정희의 허련에 대한 평가에는 거품이 끼어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자신과 반대되는
예술관을 주장하는 조희룡과 자신의 가르침에 충실한 허련에 대한 김정희의 애증(愛憎)이 담겨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수소정도(竹樹小亭圖)>

출처 : 유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3>, p. 354

<방 석도 산수도(倣 石濤 山水圖)>

출처 : 유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3>, p. 355

어쨌든 그는 1856년
스승인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 진도로 낙향하여 운림산방(雲林山房)을
짓고 제자를 양성했다. 이 과정에서 호남 화단이라는 지방 화단이 태동되었다. 새롭게 형성된 호남 화단을 비롯한 지방 화단에 대해 유홍준 교수는 “새로운 시대의 근대미술을 이끌어갈 주역이라기 보다는 곧 사라질 구시대 미술문화의 희미한 잔영(殘影)6)”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허련을 ‘조선
남종화의 마지막 계승자’이자 ‘호남 남종문인화의 조종(祖宗)’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화풍은 넷째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灐, 1862~1938)을
거쳐 현대 호남 화단의 양대 산맥인 손자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7~1987)과 방손(傍孫)인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으로 이어졌다. 그 외에 3대째인 임인(林人) 허림(許林, 1917~1942),
4대째인 임전(林田) 허문(許文, 1941~ ), 5대째인 허진(許塡, 1962~ )도 운림산방(雲林山房)의 화맥(畵脈)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