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24 리뷰

눈초공식계정
- 작성일
- 2012.5.28
남성 퇴화 보고서
- 글쓴이
- 피터 매캘리스터 저
21세기북스
21세기북스가 “이 책을 읽은 남자들이 어쩌면 배알이 꼬일 수 있겠다.”고 시니컬하게 지른 말에 가슴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이 책을 읽는 남자나 이 책을 선물로 받을 남자는 역사상 가장 ‘못난 남자’다. 아, 토를 달지 말라. 당신은 못난 남자다. 이상(8쪽)”이라고 대못박는 글로 프롤로그를 시작한 피터 맥캘리스터 교수의 욱박지르기에서도 심기가 공연히 불편해집니다. ‘어디 두고 보자, 저자가 늘어놓은 헛소리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찾아서 낱낱이 씹어주겠어’라는 각오로 책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정리하면, 고고학과 고인류학을 전공한 맥컬리스터교수의 <남성 퇴화 보고서>에서 저자가 고고학, 고인류학 그리고 인류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추론해낸, “지금의 남성들을 과거의 남성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모든 면 - 힘, 허세, 싸움, 운동 능력, 말재주, 미모, 육아, 성적 능력 등에서 능력이 떨어진다.”는 결론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반박하기 위하여 어떤 자료를 들이밀어야 할 지 조금은 막막한 느낌입니다.
다만, 남성만의 문제일까 하는 생각과, 인류가 이런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란 생각, 그리고 혹시 저자가 이와 같은 추론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세운 과정이나 이를 검증하는 절차에 오류는 없었는가 하는 의심의 시선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적습니다. 저자가 논의의 중심에 두고 있는 대상, ‘남성’을 서양남자를 과거의 남성 혹은 아프리카나 태평양 등 현대문명에 노출되지 않은 원시부족의 남성들과 비교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서양문명은 그들을 중심으로 적은 그들만의 생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류의 보편적 문명으로 통합하려면 다른 사고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맥컬리스터교수의 논지 역시 지금까지 서구가 우월하다는 식의 발상을 거꾸로 뒤집을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서구중심의 사고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제기한 힘을 비롯한 8개 분야가 남성의 능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드는 의문점입니다. <남성 퇴화 보고서>라는 제목은 아마도 책의 내용을 종합하여 정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원제목 ‘Manthropology’는 저자의 male(남성) + anthropology(인류학)의 조어라고 보입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인류학적 분석’이라는 의미로 보이는 제목을 과감하게 ‘진화를 멈춘 수컷의 비빌’이란 부제까지 달아서 <남성 퇴화 보고서>라고 정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볼멘소리도 나올법합니다. 그 이유는 지구상에 사는 생물이 진화를 멈추는 것은 멸종된 시점에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퇴화라는 단어에는 ‘좋지 않은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뜻이 숨어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 역시 논의과정에서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점은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살아남아 후세에 그 유전자를 전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은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푸란츠 부케티츠교수의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http://blog.yes24.com/document/5132111>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즉 현대의 남성은 퇴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2인자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저자가 첫 번째 플러스박스에서 ‘옛날 옛적의 바위’라는 제목으로 고인용하고 있는 고학적 발굴성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역사를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역사를 해석할 때는 당시 사람들의 삶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 즉 사관(史官)은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사실을 기록함에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섞으면 안되는 것이었으며, 사관이 기록한 사실은 왕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고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관에 의하여 기록되는 정사(正史)는 객관적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반적인 기록, 예를 들면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그리스 테라섬에서 발견되었다는 481kg의 바윗돌에 기원전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글, “크리토불루스의 아들 에우마스타스가 땅에서 나를 들어 올리다.”라고 적혀있었다 해서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인간, 특히 남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과대포장하는 버릇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본다면 말입니다.
읽으면서 겨우 찾아낸 이런 트집을 제외하고는 현대 남성이 과거에 살던 남성과 비교하였을 때, 적지 않은 영역에서 능력이 딸린다는 저자의 지적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다양한 인류학적 연구성과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조미료가 되었다고 할까요?
저자는 현대의 남성-서구문명 중심의-들은 강한 능력을 개발해서 유전적 유산으로 후세에 넘겨주었던 선조, 심지어는 원시인간 남성의 염원을 배신한 배신자라고 정리하면서도 변하고 있는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으로 용맹함을 포함하여 잃어버린 근육질 남성의 미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후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깊이 생각해볼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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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