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수첩-해외산행

나우시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4.1.2
호도협 트레킹을 마치고 여강고성내 화새호텔에서 단잠을 잤다. 아침 여섯시 모닝콜에 일곱시 출발이라 서둘러 식당에 갔는데 부페식으로 차려진 테이블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울컥할 정도였다. 음식에 까다롭지 않아서 외국에 나가도 아무거나 잘 먹지만 객잔에서 주는 기름진 중국음식만 먹다가 계란 후라이, 시리얼, 과일, 흰 죽,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진한 커피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카페인이야 여행 기간 늘 마시던 중국차에도 충분하겠지만 커피가 주는 만족감을 따라올 수 는 없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흐뭇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옥룡설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호도협의 2,800미터에서는 괜찮았지만 4,000미터가 넘는 설산에서 과연 고소증세가 오지는 않을지, 나는 고소증세를 잘 견뎌낼 수 있는 체질인지, 궁금하고도 또 두려웠다.

여강에서 매일 타던 낡은 버스를 타고 옥룡설산으로 향했다. 다행히 중무장을 한 덕분에 추위를 심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실제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은데도 이곳의 추위는 뼛속을 파고든다. 여행사에서 호도협은 가을산행, 옥룡설산은 겨울산행 복장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겪어보니 하루에도 사계절의 복장이 다 필요한 이상한 날씨이다. 곤돌라 출발장소에 도착했더니 강풍으로 곤돌라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해발 3,200에서 3,500m까지 고도를 높여주는 곤돌라를 탈 수 없다니 차라리 다른 여행지로 가자는 사람, 그냥 걸어서 가자는 사람으로 나뉘어 설왕설래끝에 걸어서 가는데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지난 주에 왔던 사람들은 31명이었는데 곤돌라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산행을 포기했다고 한다. 우리 팀은 산행을 잘하지는 않아도 나름 결기는 있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

바람도 세지 않은데 이 정도 바람에도 곤돌라를 운행하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건지 모두 투덜대면서도 산길을 잘도 걸어갔다. 현지 산악 가이드는 선두에 서고 조선족 여행 가이드는 후미에 서서 산행을 이끌었다. 무릎 아래까지 빠지는 눈길에 스패츠와 아이젠을 착용했는데도 습설이라 등산화 속으로 조금씩 눈이 녹아들어왔다. 고어텍스 등산화가 오래되어서 방수기능이 떨어진건지 떨떠름하다.

곤돌라는 우리나라의 스키장 곤돌라와는 달리 윗부분이 뚫려 있으니 리프트와 곤돌라의 중간형태인 셈이다. 곤돌라를 타야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을텐데... 바람이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돌풍이 불곤하는지라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곤돌라 하차장에 도착했다. 곤돌라가 운행할 지도 모른다고 해서 기다리고, 그 다음에는 산행여부에 대한 논란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오후 2:30에는 무조건 하산을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서둘러야 했다.

곤돌라 하차장 건너편에는 퇴락한 라마교 사원이 있었고,
군데군데 야크목장을 지나가면 본격적인 설산 트레킹이 시작된다.

옥룡설산의 설련봉 등산코스는 우리나라의 혜초여행사가 독점개발했다더니 등산로의 곳곳에 한글 안내판이 있어서 국내산행을 하는 듯이 친숙하였다.

해발 3,650m는 내가 올라본 가장 높은 곳이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직 고소증세는 없지만 언제 하산하게 될 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원래 계획에 의하면 12시 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는 해발 3,800m 지점의 설산소옥에 2:30이 거의 다되어 도착했을때 현지 마을청년이 건네준 생강차가 추위를 녹여주었다. 점심으로 누룽지와 계란볶음을 맛있게 먹고 오두막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때 정상돌격조 2명이 돌아왔는데 4,060m지점까지 갔다가 하산약속 시간이 되어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하였지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3,800m까지 올라온 것 만으로도 대만족하였다.

하산길에는 혹시나 곤돌라가 운행하지 않을까 기대하였지만 역시나 곤돌라 탑승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올라올 때와 동일한 코스로 걸어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일행 중 두 명이 도중에 길을 헤매다 늦게 합류하여 일몰을 맞이하고 겨우 여강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원래는 곤돌라로 이동하는 구간이라 이정표가 없는 때문이니 이래저래 곤돌라가 문제였다. 가이드는 미안한지 곤돌라를 타지않아 아낀 돈으로 한국음식점(서울가든)에서 삼겹살과 맥주를 무제한 쏘겠다고 인심을 썼지만 산행에 지치고, 길잃은 일행들 걱정에 마음을 쓰고, 고소증세를 앓는 사람들은 처음 내온 고기와 맥주도 다 먹지 못했다. 아쉽게도 어제 다 못돌아본 여강고성도 마저 구경하지 못한 채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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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