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맘 속의 무지개

분홍쟁이
- 작성일
- 2019.11.17
질문하는 미술관
- 글쓴이
- 고산 외 1명
앤길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인문예술 수업]
이런 책을 기다렸다. 명화를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저 한 번 휙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부여되어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한편으로는 그런 점에서 처음에는 이 책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 미술에서 어떻게 사회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건지, 괜히 갖다붙이는 이야기는 아닐지 색안경을 끼고 읽었다. 하지만 첫장에서부터 밀려오는 그림과 사회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라니! 과연 이만열이구나 싶다. 사실 그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책만으로도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 두꺼운 분량은 아니지만 여기에 담긴 내용과 의미는 그 어떤 책보다 묵직하고 단단하다.
첫장부터 보기좋게 깨진 나의 편견. <차별>이라는 챕터에서 그는 메두사를 들이민다. 나의 기억 속에서도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뱀으로 된 마녀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를 물리친 것은 영웅 페르세우스. 어렸을 적 읽은 신화에서도 페르세우스가 기지를 발휘해 메두사의 목을 베었을 때 가슴 속에서 전율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메두사에게도 사연이 있었다니! 그녀는 아테나 신전의 사제였다. 포세이돈이 그녀의 미모에 반해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본 아테나가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바꿔버리고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른 지역 신화에서는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메두사를 포세이돈이 신전에서 성폭행하고, 그런 악행이 자신의 신전에서 발생한 것에 크게 분노한 아테나가 메두사에게 저주를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아들였든 그렇지 않든 어째서 메두사에게만 저주가 내렸던 것일까.
저자는 메두사 신화가 남성을 유혹하고 그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여성에 대한 불안을 야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이에 대한 처벌의 정당성까지. 결국 신화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이야기 하는 문장을 읽으면서 섬뜩해졌다. 이렇게 신화를 통해, 그렇게 오랜 세월을 우리가 세뇌당하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 물론 정말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꽃뱀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매도하고 오히려 그녀들을 비난하면서 '꽃뱀'이라고 짓밟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의문을 품게 만든다. 메두사를 괴물로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정작 가해자는 따로 있었음에도, 어째서 우리 사회는 피해자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익숙한 명화와 신화들을 바탕으로 총 8개의 사회 문제를 되짚어간다. 차별, 혐오, 불평등, 위선, 탐욕, 반지성, 중독, 환경오염.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놀랐지만 마치 한국 사람처럼 작금의 한국의 모습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각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동안 작가와 작품 중심, 혹은 미학 중심으로 그림을 읽어왔던 것에 비해 이번 경험은 색다르고 의미깊었다. 불멸의 작품들에 반영된 우리의 현실. 예술은 계속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는 무궁무진하다. 그림을 좋아한다면, 혹은 앞으로 어떻게,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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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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