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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상해임시정부에서 경교장까지
- 작성일
- 2019.12.20
상해임시정부에서 경교장까지
여기가 상해 임시 정부입니다 / 바우솔
서울삼선초등학교 4학년 3반 김효*
올해 2019년 3월 1일 엄마는 개학전날인 나의 손을 잡고 광화문을 향했다. 내일 새 학년 새 교실에서 새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과 들떠있는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엄마를 따라 나섰다. 내가 간 곳은 3.1만세운동 100주년 행사를 하고 있던 광화문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2019년은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올해 나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서대문형무소, 서울역사 박물관, 국립중앙 박물관,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 경교장 등 3.1운동과 일제강점기에 대한 많은 전시관을 가고 교육을 받았다. 그 중 가장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그런 장소는 바로 경교장이다.
경교장은 현재 강북 삼선병원 입구에 위치한 병원 안, 병원 소유의 오래된 건물이다. 나는 한 세 번쯤 그곳에 가 보았다. 그 곳에 갈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다. "이런 곳도 있었어?"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박물관이야?" "여긴 뭔데 단체로 해설을 들으러 오지?" 사람들의 이상하다는 듯한 웅성거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곳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임시정부가 있던 곳이다. 그리고 임시정부의 문지기이자 수장이었던 김구 선생님께서 안두희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장소이다.
서울 시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다는 것은 나도 신기했다. 그리고 경교장 이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의 주인공 기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가의 딸이다.
기선의 부모님은 1919년 3월 1일 3.1절에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 일본 경찰에 쫓겨 상해로 왔다고 한다. 그 후 기선은 나라를 떠나 쭉 상해에 살고 있다. 중국 주인집 딸 리웨이가 망국노라 놀리고, 나라도 없다고 구박을 해도 말을 할 수 없다.
기선의 아버지는 사진가라고 한다. 하지만 돈이 없어 장사하러 다니느라 기선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 대신 기선은 문지기 아저씨와, 봉길이 삼촌과 종종 보곤 한다.
하지만 결국 기선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러 여기저기 다녔던 것이다. 그것이 자식보다 나라를 생각하는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의 삶인 것이다. 기선은 이에 불만이 많았다. 나라도 아빠가 위험한 일을 하고, 나라만 생각했으면 그랬을 것 같다. 당장 나라보다 내가 배고프다고 아빤 우리 식구는 생각 안하느냐고 소리쳤을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기선도 이것이 바로 기선과 우리나라의 아이들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봉길이 삼촌은 태어나서 열 살이 되도록 우리나라에 가 본적이 없는 기선에게 “기선이가 꼭 우리나라에서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꿈인 선생님이 될 수 있게 해 주마.”라고 약속을 한다.
그렇게 봉길이 삼촌은 아빠와 마지막 사진을 찍고 도시락 장사하겠다며 홍커우 공원으로 향한다.
걱정되어 뛰어간 기선의 눈에 일본군에게 폭탄을 던지고 잡힌 봉길이 삼촌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라면 덜덜 떨다 같이 잡혔을 것 같다. 하지만 기선도 독립운동가의 딸답게 문지기 아저씨의 말을 먼저 생각한다.
‘문지기도 좋고, 심부름꾼도 좋다. 무슨 일을 한들 어떠하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내가 경교장에서 보았던 김구선생님의 말씀과 같다. 그렇게 기선은 문지기 아저씨가 김구 선생님인 걸, 봉길이 삼촌이 윤봉길 의사이며 모두 독립운동 중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김구선생님과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상해를 떠난다.
그리고 이 책은 끝나지만 나는 경교장을 비롯한 역사박물관에서 수업을 들이며 이 책 뒤에 기선과 임시정부에서 일했던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다. 상해를 떠나 항정, 창사, 충칭 등 기차로, 배로, 걸어서 어마어마한 피난 생활을 했다. 차비도 없어 수도 없이 굶고,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겨가며 임시 정부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기선도 그렇게 힘들게 충칭까지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과 포지하지 않는 마음 덕분에 우리는 독립을 했고, 기선은 결국 우리나라의 광복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을 것이다.
기선은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꿈인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어가 아닌 우리나라 말과 글을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다.
봉길이 삼촌의 희망대로 기선은 임시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기선의 눈에도 작아 보이는, 다섯 식구가 자는 방보다도 작아 보이는 방으로 된 상해 임시정부를 가진 대한민국이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해 세계에서 우러러 보게 되었다.
그런 우리나라를 갖게 해 준 그 분들.
지금의 나와 친구들을 망국노라 불리지 않게 해 준 그 분들.
임시가 아닌 당당한 우리 정부에서 자랄 수 있게 해 준 그 분들.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그분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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