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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천 개의 하늘, 그 중 나의 파랑은
- 작성일
- 2022.05.24
천 개의 하늘, 그 중 나의 파랑은
천 개의 파랑 / 허블
경기 광명구름산초등학교 초등학교 6학년 4반 우지*
가끔 하늘을 본다. 바라보고 있으면 목이 좀 아프지만, 빨려들어 갈 것처럼 거대하고 아름다운 하늘을.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하늘을 바라보며 이날에 대해 생각할 날이 올까. 오늘의 하늘은, 우울해 보이면서도 매력 있는, 먹구름이 조금 낀 회색파랑이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 곳곳에는 일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다. 콜리도 그중 하나이다. 콜리는 한 연구생이 개발 중인 학습 휴머노이드를 위한 칩을 실수로 콜리에게 넣음으로써 생겨난 로봇이다. 콜리는 경마장에서 기수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리가 다른 기수들은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 경기중에 스스로 낙마한 것이다. 인간의 재미를 위해 더 빠르게 달리다가 무릎이 망가져 버렸지만, 더 빠르게 달리고 싶어하는 경주마 투데이에게 자신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사람들의 삶, 기억, 상처 그리고 시간은 모두 다르다. 천 개의 파랑속 콜리가 이야기해주는 인물들인 은혜, 연재, 보경도 그렇다. 한가족이긴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달랐다. 하지만 아름다웠다. 마치 매일매일 다른 색의 하늘처럼.
은혜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탄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사정이 어려워져 로봇 다리를 갖기 위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세상은 이런 은혜를 '비정상적'으로 여긴다. 은혜는 자신이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도망쳤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은혜를 자신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처럼 느낄까? 그리고 왜 은혜의 허락도 없이 갑자기 휠체어 솝잡이를 잡는 걸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정상적'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모든 사람은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사람은 은혜의 말처럼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기준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거짓된 기준은 자신이 '정상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서 진실로 믿어지고, 결국 몇몇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결국 세상은 발전해나가지만 몇몇 사람들은, '비정상적'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리 벽에 갇힌다. 이러한 세상에서 은혜는 도망쳤다. 다시 돌아오는 날짜도 정해두지 않은 채. 내가 그런 은혜에게 가장 감동받았을 때는 은헤가 연재와 한 대화 중 연재가 "언니는 자유롭고 싶은 거지?" 라고 물었더니 은혜가 "난 이미 자유로워." 라고 말한 장면이었다.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자유롭다는 것은 몸이 자유롭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은혜는 세상에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게 아닐까. 다리가 망가졌음에도, 안락사 될 위기에 처했음에도, 달릴 수 없을 거라고 보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투데이의 모습을 보고 느낀 것이 아닐까. 세상이 어떻게 보든 자신은 자신의 길을 달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세상이 아무리 나를 비정상적으로 여길지라도, 난 갇히지 않겠다고. 힘들겠지만 은혜처럼 이겨내겠다고.
나는, 나아갈 수 있다.
은혜의 동생 연재는 이해받는 것을 포기했다. 동시에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다리가 불편한 언니 밑에서 연재는 잠시라도 모든 관심을 독차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침묵의 길을 선택했다.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완벽한 이해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모든 사람은 이해받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친한 친구나 가족일지라도 나의 기분을 헤아릴 수 없다. 따라서 이해받기 위해선, 우린 먼저 말해야 한다. 즉,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해… 우린 왜 이해를 받고 싶어 하고, 또 하려고 할까. 그건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않는 동시에 이해하지 않으면, 훨씬 편안할 것이다. 처음에 연재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하는 이유는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만나고, 공감하고 이해하며 생긴 기쁨이다. 이해로부터 벗어난 고요보다 기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린 이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이해는 곧 소중한 존재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부모님이든, 형제자매든, 친구든 혹은 동식물이든. 우리는 그 소중한 존재로부터 행복, 기쁨 그리고 슬픔을 느끼기도 하며 성장한다. 결국 이해는 서로를 이어주는 존재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와 함께 살아가는 이유이다.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넘어졌을 때 서로 일으켜줄 수 있다. 모두 다른 하늘이지만, 우린 서로의 하늘을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은혜, 연재 그리고 보경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라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존재인 것 같다.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 그렇지만 정작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있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 보경. 보경은 소방관이었던 남편을 잃고 지금까지 바쁘게 달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난 살면서 한 번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나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무언가 큰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6살쯤, 놀이공원에서 놀다가 신발에 달려있던 천사모양의 장식을 잃어버렸다. 그걸 안 후에 한참 울었다. 어딘가에 홀로 떨어져 있을 천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2년 전에도 찢어진 나의 이불을 할머니가 버리셨을 때 통곡을 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비교도 안 되게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린 살면서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다. 나는 이별의 고통을 이기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이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잊어선 안 된다. 실수가 기회와 같은 말이듯이, 이별과 만남도 같은 말이라는 것을. 꿈속에서든, 천국에서든, 마음속에서든, 우리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과의 행복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들이, 형태는 없지만,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은 기억들이, 언젠가 그 사람과 나를 연결시켜주지 않을까.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다시 만날 날에, 처음엔 당신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이날을 기다리며 당신에게 들여줄 행복을 쌓았다고, 당신이 없었지만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이 날 위로해주어서 다시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우린 그리울 것이다. 아무리 그 사람이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결국은 그리울 것이다. 언젠가 보경이 콜리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그렇다면, 보경의 말처럼, 그리운 시절로 돌아가는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면, 우린 행복해져야 한다. 하지만 행복은 어떻게 느끼는 걸까. 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게, 시간에 쫓겨 살아가다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하지만 천천히, 무릎을 다친 투데이가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한 것처럼 천천히 달리다 보면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달린다면, 딱딱한 도로 위를 뚫고 나온 강아지풀, 서로 도와가며 무언가를 열심히 옮기는 개미들, 예쁘게 핀 민들레처럼 빠르게 달린 땐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들로부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구에는 약 78억 명의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78억 개의 하늘이며 78억 개의 파랑이다. 모두가 소중하다. 오늘 누군가의 하늘은 흐릴 것이다. 어쩌면 천둥이 칠지도. 하지만 우리는 가끔 세상에서 가장 밝은 하늘을 만들어낸다. 그럼 우리에게선 빛이 난다. 그 밝은 하늘은 행복이 아닐까. 가끔 힘들고 지칠지라도, 우리는 빛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빛을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두워진 자신의 길을 밝히기 위해.
지금까지 내 시간을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흘러가고 있을까. 난 내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며 살고 있을까. 난 지금 행복할까. 여러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나로 살 것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겨나갈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달릴 것이다.
난 모든 사람이 이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기억할 것이다.
"난 경주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경주마가 아니야. 초원에서 개미와 인사하며 자유롭게 달리는 말이지."
언젠가, 달리던 걸음을 잠시 멈췄을 때, 나는 내가 행복하게 달려오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날,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 난 천천히, 행복하게 달려오고 있었어.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빠르게 달려와서, 시간이 멈춰있거나, 아니면 너무 빠르게 흘렀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천천히 달릴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순간까지 숨차게 달려온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천천히 달리세요. 그럼 당신의 시간도 다시 천천히 흐를 거에요. 서두를 것 없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행복이니까요."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다. 그럴 때면 창문 사이로 난 하늘을 본다. 문득 내 하늘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것과 다른 나만의 것일 것이다.
나는 다짐했다. 나만의 하늘 아래서 작은 풀꽃 하나 놓치지 않고 천천히 달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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