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이 출간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작가가 몇 명 있다. 김중혁, 정유정, 이다혜, 프레드릭 배크만 등인데 그 중 한 명이 지금 리뷰를 쓰고 있는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의 저자 피아니스트 안인모 작가다. 전작 「클래식이 알고 싶다」 낭만 살롱편, 「클래식이 알고 싶다」 고전의 전당편을 통해 클알못들에게 클래식을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다면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는 그림과 클래식으로 오늘 하루도 수고한 독자들에게 따뜻한 응원과 위로를 전해준다.

책은 '일과 꿈', '성장', '사랑과 이별', '인간관계', '휴식과 위로', '아픔과 소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6개 쳅터로 52점의 그림과 클래식을 만날 수 있는데 책 속 QR코드로 음악을 들으며 읽을 수 있고, 저자의 유튜브 채널 <클래식이 알고싶다>에서도 그림을 보며 전 곡을 감상할 수 있다. 책은 마치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미술관에서 클래식 해설가 안인모가 응원과 위로를 주제로 따뜻한 해설 아래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오랜기간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대중들과 소통하고 콘서트,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쌓아온 저자의 가슴 따뜻한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낄 수 있다.

◆ 오늘의 그림 에드가 드가, <다림질하는 여인들>, 1886

◆ 오늘의 클래식 요한 파헬벨, <캐논>, 약 1700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발레 그림들이다. 가난한 화가였던 드가는 모델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발레리나나 음악가들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극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드가는 자신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 한 발레리나 소녀의 어머니를 그리기도 하는데 그녀의 직업은 세탁부였고 소외된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에 사로잡힌 드가의 관심은 극장에서 세탁소로 옮겨갔다. <다림질하는 여인들> 속 세탁부들은 무척 고단해 보인다(여성 한 명은 왼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크게 하품을 하고 다른 여성은 셔츠를 다리느라 온 힘을 다리미에 싣고 있다). 당시 다림질은 힘든 가사 노동이었다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해서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내는 세탁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베이스의 2마디의 화성 진행을 4/4 박자에서 무려 28번이나 반복하는 돌림노래인 캐논의 선율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문득 얼마 전 인상 깊게 관람한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매일 반복적이지만 화장실 청소에 진심을 다하는 청소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로 '다음이 아닌 바로 지금'을 충실히 살아가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모습은 저자 안인모가 책 전반에 걸쳐 전해주는 메세지인 선물 같은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지,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 지를 깨닫게 해 준다.

"돌림노래인 <캐논>을 들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해서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 29쪽

◆ 오늘의 그림 오귀스트 르누아르, <도시 무도회>, <부지발 무도회>, <시골 무도회>, 1883

◆ 오늘의 클래식 에릭 사티, <난 당신을 원해요>, 1896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그의 부모님이 의상실을 운영한 덕분에 유달리 패션 감각이 뛰어나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무도회 그림 3점 중 <도시 무도회>와 <부지발 무도회> 속 여성 모델은 당시 르누아르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수잔 발라동이다. 수잔 발라동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르누아르뿐 아니라 드가, 로트레크, 모딜리아니 등 당대 웬만한 프랑스 화가들의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데 어느 날 몽마르트 언덕의 유명한 카페 '검은 고양이'에서 피아노를 치던 에릭 사티가 연인인 주식중개인 폴 무시스와 함께 카페에 방문한 발라동을 보고 첫눈에 반해 청혼을 하지만 단칼에 거절을 당한다. 거절을 당했음에도 발라동을 열렬히 사랑한 사티는 그녀의 초상화까지 그려주는 등 온갖 노력 끝에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만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하고 헤어진다. 발라동과 헤어진 지 3년 후 사티는 사랑을 갈구하는 파코리의 시를 가사로 노래를 작곡하는데 이 곡의 제목이 <난 당신을 원해요>다. 발라동과 헤어진 후 평생 그 어떤 여성도 만나지 않았던 사티가 발라동을 잊지 못하고 작곡한 곡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르누아르의 마지막 무도회 그림 <시골 무도회> 속 여성 주인공은 르누아르의 아내인 패션 디자이너 알린인데, 알린이 쓴 모자가 발라동의 빨간 모자와 똑같은 것을 보면 당초 발라동을 그렸으나 훗날 어떤 사정이 생겨 알린의 얼굴로 바꿔 그린 것으로 추측하게 된다. 안방 옷장에 아끼는 옷이 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옷이 상할까봐 잘 입고 나가지 않는데, 때로는 과감히 옷장에서 아끼는 옷을 꺼내 입고 외출을 해야겠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 멋쟁이처럼 멋지지는 않지만 남들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중략) 어디든 좋아요. 춤추러 가도 좋고, 도서관도 좋고. 이 순간, 망설일 필요 있나요? 오직 나를 위해 용기 내서 나가봐요. 일주일 동안 수고한 나는 하루쯤 그래도 되니까. - 285쪽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는 출간하자마자 구입한 후 집에서 한 번 완독하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저자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책 속 음악을 연속 재생해 들으면서 틈틈이 재독까지 했다. 더구나 <사락 독서 챌린저>를 통해 책 속 빛나는 문장들을 다시 음미하며 필사까지 할 수 있어서 내게 선물 같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리뷰 지면 길이상 52점의 그림과 클래식 중 2점만 리뷰에 소개했지만 프리드리히의 <범선 위에서>와 슈트라우스의 <내일!>, 피카소의 <나, 피카소>와 피아졸라의 <나는 마리아>, 들라쿠루아의 <쇼팽과 상드>와 쇼팽의 <이별의 노래>, 칼로의 <수박, 인생이여, 만세>와 포네의 <작은 별> 등은 리뷰에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 작품들이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분명 내가 경험 했듯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그 어떤 심리학 책보다도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가슴에 스며들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한 당신, 그림 한 점과 클래식 한 곡이 전해주는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하길 바란다. 역시 그림과 음악은 삶을 충만하고 아름답게 해 준다.

#사락 독서 챌린지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 #안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