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연주한 사람을 알고 있다. 『새는 왜 노래하는가? Why Birds Sing : A Journey through the Mystery of Bird Song』의 저자 데이비드 로텐버그이다. 그는 2000년 3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공공조류동물원인 피츠버그 소재 국립조류동물원(National Aviary)을 찾아간다. 세상의 소리가 하나 둘 들리기 시작하는 동틀 무렵이다. 조류동물원 들머리에는 사운드 아티스트인 마이클 페스텔(Michael Pestel)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미 이곳의 새들과 수년째 공연을 펼쳐온 인물이다. 페스텔은 플루트와 수공예품인 다양한 현악기를, 그리고 저자는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꺼낸다. 그러고는 동물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연주를 시작한다.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새는 흰웃는지빠귀이다. 흰웃는지빠귀는 클라리넷 연주에 흥겨워 계속 웃고 있었다. 그것은 덤불의 재즈이자 인간 세계와 조류 세계가 함께 하는 즉흥연주였다.

데이비드 로텐버그가 새와 협연하는 장면을 읽고 감동하며 제대로 새의 세계로 다가갔다고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사람이 있다. 다카기 마사카쓰이다. 데이비드 로텐버그가 새와 동등한 연주가라면 다카기 마사카쓰는 자연한테서 이미 전체성을 본 사람이다. “나는 가득 찬 세계 안에 있다. 모든 것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지금껏 알아채지 못했을 뿐, 미세한 움직임과 형태와 색과 소리로 이 세계는 충만하다”. 하여 다카기 마사카쓰가 자연의 소리와 함께하는 연주는 마지널리아(Maginalia)이다. 마지널리아가 ‘글 주변의 여백에 끼적인 메모’이듯 그의 연작 ‘마지널리아’는 자연의 소리 여백에 조심스레 넣는 연주인 것이다.

홀로 완결된 것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고 믿게 된다. 무언가가 연주하고 움직이고 색을 띠면 거기에 살면서 응답이라도 하듯, 다른 무언가가 연주하고 움직이고 색을 띤다. 그곳에는 빙글빙글 도는 순환이 있기 때문에 활기 넘치지만 온화하다. 이쪽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멋대로 소리를 내 버리면 그 순간 소리는 흩어지고 정적이 흐른다. 반대로 이쪽에서 상대방의 소리를 잘 들으려고 하면 할수록 자연은 더 잘 노래한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여백이 눈에 들어오고 내가 연주해야 마땅한 소리를 절로 알 것만 같다. (219쪽)

책은 6년 동안의 기록이다. 다카기 마사카쓰가 나고 자란 교토 시내를 떠나 산골 마을로 이사한 뒤 겪는 일상을 담았다. 이미 음악가로 명성이 있는 30대 사내가 아내와 함께 마을 사람들과 동화되어 가면서 자기만의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산골이니만큼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인 그곳에서 그들의 지혜를 받아들일뿐더러 그곳의 축제를 되살려 함께하는 모습에서 다카기 마사카쓰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태도가 산골에서 한 경험과 어우러져 마침내 ‘마지널리아’의 세계에 당도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보니 다카기 마사카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해인이 공부하며 많이 듣고 있던 음악이 ‘마지널리아’라는 게 놀랍고 반갑기도 하며 당연하다 싶다. 그의 음악은 우리에게 소리 없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