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요조의 첫 번째 수기 첫 문장이다. 문득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주인공 마츠코가 자신의 방 벽에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고 쓴 문구가 떠올랐다. 시대도 형식도 다르지만, 기괴하리만치 처참한 인생을 그려낸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아있다. 두 주인공은 명랑한 익살꾼을 자처하지만, 그 내면은 지독한 고독뿐이다. 서서히 자기혐오에 빠지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애처롭다.

하지만 『인간 실격』은 요조라는 인물을 통해 타산과 체면으로 굴러가는 인간 세상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아가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지 못하면 낙오자로 내모는 냉혹한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작중 넙치와 호리키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이는 평범한 인간형이지만, 추악한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물론 요조 역시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요조는 호리키의 허세와 위선을 경멸하면서도 그에게 의지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정작 관계가 깊어지면 상대에게서 도망친다. 그러나 “남들한테 호감을 살 줄은 알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라는 요조의 자조 섞인 고백에는 익살꾼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느라 정작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그의 고립된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세상을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하는 모순 속에서 늘 혼란스러웠다.

이런 그도 한때는 순결무구한 믿음에 희망을 걸고 세상에 섞여보려 했으나 그 믿음이 불러온 비극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다.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자신을 구원해 준 요시코의 무구한 신뢰심에조차 의혹을 품게 되자 요조는 자기 파괴의 길을 걷는다. 이전에 요조는 죄의 반의어는 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요시코가 더럽혀진 일이 ‘벌’이라면 그 비극을 초래한 그녀의 순수한 믿음은 ‘죄’가 되냐고 요조는 몇 번이고 울부짖었다.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하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는 결국 정신 병원에 수용된다. 수용실 문이 철컥 하고 잠기자 그는 자신에게 말한다.

“인간 실격.”

『인간 실격』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는 어느 고독한 인간의 절망과 상실감을 처절하게 그려낸 이야기이다. 그는 세상에 스며들고 싶었으나 그가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나는 슬슬 요조의 이중적인 태도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간 심리를 꿰뚫는 그의 예리한 통찰력이 무색하리만큼 그는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좌절한다. 인간의 이중성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에게 기대를 품었다는 뜻이다. 또 자신을 위로해 준 여자들에게 그가 취한 태도는 한없이 무책임하고 나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요조는 인간 실격자인가, 아니면 인간 실격자로 낙인찍힌 자인가. 내가 그에게 들이댄 잣대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하는 본질적인 물음이 이어졌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성 상실은 무엇이며, 과연 인간 실격자는 누구인가.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누군가는 실격되고 누군가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