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공식들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난을 겪지만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를 이겨내고 지금의 성공을 이루어 냈다는 성공담을 자랑과 고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풀어낸 이야기를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 하나인 빌게이츠의 자서전 <소스 코드 : 더 비기닝> 은 전혀 다른 책이었다.

책은 빌게이츠가 외할머니와 카드 게임을 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길 열망하던 어린아이는 시애틀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걸 잘하는 누나와는 달리 모범적이지 않았다. 하이킹, 수학, 연극 등 좋아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고 머리가 커지면서 부모님에게도 반항한다. 숙제로 나온 델라 웨어에 대한 보고서를 177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하기도 하지만 대인 관계는 서툴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자폐로 판정받는 아이였다고 빌 스스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머리는 좋았고 지적 호기심이 있어서 남들과 다르게 세상을 읽고 이해해 나갔다. 그리고 세상의 조각들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시각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모델로 그 당시 처음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마이크로 컴퓨터와 그를 운영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찾았다. 수학 공부로 쌓은 논리적인 사고로 더 간결하고 원하는 것을 구성하는 소스 코드를 만드는 일에 그는 말 그대로 몰입했다. 하이킹을 하는 도중에도 머릿속으로 코드를 생각하고 수업을 빼먹고, 밥도 안 먹고 야밤에 집에서 나와 컴퓨터 단말기 앞에서 쪽잠을 자는 일을 중학교 2학년부터 하버드 대학생이 되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 몰입의 시간을 통해서 빌 게이츠는 어린 나이에 전문가들을 뛰어넘는 소프트웨어 실력을 갖추게 된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라고 하면 윈도와 Office만 떠올리겠지만, 실제 게이츠가 했던 일은 막 태동했던 개인용 컴퓨터 시대에서 우후 죽순처럼 출시되던 하드웨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공짜로만 여겨지던 소프트웨어라는 무형의 자산에 가치가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직 주름깨가 가득한 십 대의 청년이 단말기 앞에 앉아서 동료들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적용하고 결과를 보고 다시 수정하는 루프를 무한히 반복하는 모습이 상상이 갔다.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그렇게 흠뻑 문제에 스스로를 푹 담그고 난 뒤에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리고 그 사이에 얼마나 부쩍 커 있을까?

빌 게이츠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백인 중심의 사회에서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막 태동한 컴퓨터를 접할 수 있는 사립학교에 다니고 지적 유희를 함께 할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던 환경은 분명 우호적이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도 그가 이렇게 남다른 길을 갈 수 있었던 건 일반적이지 않았던 그의 길을 지지해 주고 도와준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부모님을 상담해 준 크레시 박사는 아이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라고 조언했다. 사람 대하는 것이 서툴던 빌에게 도서관 정리를 맡기면서 카피에르 선생님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라고 했고, 하바드 지도교수였던 치텀교수는 학교 컴퓨터를 사적인 일에 썼다고 추궁받는 빌을 옹호해 주었다. 1960년대 컴퓨터가 무엇이진 어디에 쓰이는지 아무도 잘 모르고 무슨 일을 벌이는지 상상도 가지 않았겠지만 빌 게이츠가 컴퓨터에 묻혀 지내는 시간의 힘을 믿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어른들 덕분에 빌 게이츠는 아무도 가지 않던 길에 뛰어들었고 세상을 바꿨다.

책장을 덮으면서 나도 빌게이츠처럼 그렇게 해가 뜨는지도 모르게 밤새워서 무언가에 고민해 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싶었다. 돌이켜 보면 알아주지 않아도 궁금해서, 대충 해도 되지만 해결하고 싶어서, 어려운 문제였지만 길을 찾고 싶어서 그 생각만 하던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빌 게이츠 정도는 아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더 짧아지는 시점을 지나면서 나도 이제는 아이를 고등학교로 보내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나 스스로 다시 몰입할 주제도 찾아야겠지만 무언가에 몰입하는 누군가를 지지해 주어야겠다고 다짐을 더 하게 된다. 빌 게이츠 곁을 지켜준 어른들처럼 나도 내가 살아온 시대의 규범에 맞지 않아도 불편해하지 않고 재밌어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장발에 미소 띤 빌게이츠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릴 것 같다. 그게 늘 미래를 바라보던 빌 게이츠가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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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