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이 매우 시각적이었다면

2권 역시 시각적이다.

저자는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끊임없이 자줏빛의 이미지를 반복한다.

마찬가지로 '거울'의 이미지와 상징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거기에 더해 2권은 상당히 촉각적이다.

매우 서늘하고 춥다.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수직하강하기 0.1초 전, 이제 남은 건 종착점을 향한 질주라는 걸 알기에 이를 꽉 깨물에 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윽!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롤러코스터가 숨가쁘게 수직으로 하강한다.

90도 경사면을 망설임도 없이.

거기서 한 사람, 한 사람씩 튀어 나간다.

저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한 명씩, 한 명씩 자기가 구축했던 캐릭터들을 죽여 나간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야?'가 궁금하기보다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건데? 그 비밀이라는 게 그만큼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일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누가 내 편이고 남의 편인지 판단도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 외엔 믿을 게 하나도 없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까?

암튼... 결론은... 1권에서도부터 예상했던 바로 그 이미지로 끝난다.

"각각의 책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어. 그 책을 쓴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도 가지고 있어. 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가 그 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릴 때마다, 그 책의 영혼은 커지고 강해지지. 이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잊혀 버린 책들은 이곳에서 영원히 살면서, 새로운 독자나 새로운 영혼의 손에 이르기를 기다려."

책속에서 반복되는 메시지인데, 나같이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좀 섬뜩해지는 이야기이다.

음... 이 소설의 특징상 스포일링이 되지 않게 리뷰를 쓰려니 참 어렵다.

암튼 이 책은 <전설의 고향>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럼 위의 메시지가 뜨면서 '이 이야기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전해지는 전설입니다.'로 끝날 것 같다.

뭐랄까? 정서 자체가 낯설지 않다고 해야 하나?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서와 상통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그래서 한국 독자들이 좋아하나?).

그러나 롤러코스터의 백미인 수직하강이 끝나면 그 다음은 좋게 말하면 안도하게 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시시해지는 거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지막 부분은 기존의 여타 다른 소설들과 큰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1권에서 탄탄하고 촘촘하게 쌓아왔던 것들과 거침없이 수직하강했던 긴장감 최고조의 롤러코스터에 비하면 결론은 너무 밋밋하다 못해 싱거울 정도다.

러브 포비아인지 계속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다니던 크리스티나(나는 도대체 다비드가 크리스티나를 왜 좋아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이 책을 지적 스릴러물이라고 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데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나 1권에서 나름 통통 매력을 발산하다가 2권에서는 이름만 몇 번 언급되고 마는 이사벨라라는 두 여주인공도 아쉬움이 크다.

흔히 장진을 평가할 때 '천재인 건 알겠는데 여성은 너무 모른다.'라고 하는데,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의 작품 속 여성들은 너무 전형적이다.

2권에서도 이사벨라라는 캐릭터를 좀더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암튼 그래도 단 한 권의 책만 읽고 작가를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므로 조만간

『바람의 그림자』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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