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권의 책을 같은 주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것으로 읽었다. 시대가 바뀐지 이제 딱 반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 10년간 지켜온 것들이 전부 뒤집어졌다는 느낌이다. 그 중에는 마땅히 바뀌어야 하는 것들도 있었겠지만, 우리들이 소중하게 생각해온 가치들은 어떤 경우도 지켜졌어야 했는데, 그것이 안타까워 계속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 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어째서 이렇게 빠르게, 쉽게, 어이없게 후퇴하게 되었는가? 또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르며 진행돼온 민주화 운동이 모든 영역에서 우리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얼마나, 무엇을 기여하였는가? 지금의 우리 사회 민주주의 현황을 점검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개의 곤혹스런 질문에 봉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는 우리사회 각 분야를 돌아보기 위해, 공동으로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준비 했고, 2009년 11월과 12월 한 주에 두 번씩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과 토론을 통하여 강연자와 수강자의 관계는 자연스레 시민과 시민의 관계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그 강연의 내용을 모아서 거기에 조금 살을 붙였다고 한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는 건 세가지 경우라고 한다. 국가권력의 오용과 남용이 민주적 사회운영의 원칙을 파괴할 때, 시민성 혹은 시민정신의 악화나 포기, 그리고 사회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무시되고 무너저내릴 때라고 한다. 이 세가지중에서 우리 현실에서 중요성을 직시하고 실패를 성찰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요소라고 그는 말한다. 민주사회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홍구 교수는 한국만큼 민주화가 되어있는 나라도 드물다고 말한다. 한국은 비주류가 두 명이나 대통령이 될 수가 있었고,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기각된 후에도 정치보복을 당하지 않는 나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주류에 편입될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는 임시정부 시절부터 한국에 민주주의가 이식된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민주화로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다고 말하는 그는 단지 우리 마음이 복잡했을 뿐이라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질 수밖에 없으며, 연대만이 살길이고, 싸운다면 그 길은 반드시 온다고 말한다.

어떤 지식도 우리 삶의 구체적인 문제와 상황에 응답하지 못하면 죽은 지식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민주화된 정부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이야기한다. 언론, 기업, 종교, 학교, 금융 등은 역 민주화 또는 역 근대화 되면서 소수 상류층에게 권력과 재화와 가치를 집중시킨 가운데 정부만이 이들에게 포위된 외로운 섬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한번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성운동가 정희진씨는 이시대 소수자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소수자는 소수와 다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권력이 정한 임의적인 범주, 경계, 규범에 대한 담론이라고 말한다. 차이가 차별을 낳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조직은 모든 구성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우석훈씨는 강남의 아파트가 한국 경제는 물론, 문화마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서 볼수있듯이 지난 세월 한국이 걸어온 길의 키워드는 토건질 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세계는 생태와 자원경쟁에 돌입하고 있는데, 세계와 거꾸로 간 한국의 미래는 더 이상 토건질은 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수천만 원의 등록금 빚을 안고 사회로 나서는 지금의 20대에게 아파트와 같은 것은 머나먼 남의 나라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토건시대의 종말이 모든 빛의 종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제 빈자들의 생태학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그는 말한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문제는 계급의 문제이고, 불평등의 문제라고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이야기한다. 민주화가 되면서 계급투쟁이 학벌투쟁으로 전환 되었으며, 학벌투쟁은 사회의 학벌체계를 개혁해야 해결되는 동시에 우리 내면의 공포와 욕망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여서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자식에 대해서도 아이들의 의사와 자유를 지켜줄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김종철 교수는 우리가 헌법과 자유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빈 껍질만 남게 된다면서 헌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오연호 기자는 언론 민주주의를 위해 실핏줄 언론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진중권 교수는 말하길 우리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에 넘어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가 원하는 건 산업사회로 되돌아 가자는 것 이라고 한다. 머릿속에 삽 한 자루만 들어있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경제 자체도 모르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바로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이런 현상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밖에도 홍성욱 교수는 과학기술정책의 투명성과 과학과 사회의 상호신뢰 구축에 대해서, 김찬호 교수는 생활의 광역화와 개별화 속에서 신뢰와 연대가 가능한 마을 만들기에 대해서,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는 세상을 바꾸는건 절대 다수가 아니라 소수, 깨어있는 시민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읽는 책들이 한가지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오월이 서러워서,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구매한 책들을 몰아서 읽기 때문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이고, 또 호불호, 혹은 수용여부가 각 개인들에게 명확한 책이기에 즐겨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헌데, 계속 같은 종류의 책을 읽다 보니 내용이 많이 겹친다. 아마 대한민국 사회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로호의 불행을 보면서 홍성욱 교수의 과학기술정책의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또다시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