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키다 히데미입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공부를 못해요."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을까라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저었다.

"거기다 글씨도 엉망이야."

점점, 모두들 요절복통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내가 서기를 해야 하는 거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틀렸어. 나는 인기가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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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말이다, 아무리 성적이 좋고 멋진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얼굴이 못생겨 여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면 모두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에게 무시당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 아무리 대단한 말이라도 허망한 게 아닌가. 다른 모든 것이 훌륭하지만 괴상망측한 얼굴을 가진 사람에게 '당신은 여자에게 인기가 없어'라고 속삭여주는 것만큼 통쾌한 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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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간이 끝나자 와카야마가 웃으면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도키다, 너 몇 점이야?"

"왜?

"아니, 그냥 걱정돼서, 반의 간부가 공부를 못하면 좀 문제 아니겠어. 난 만점에 가깝지만 말이야. 뭔가 불공평한 것 같아서."

"불공평이고 뭐고 없지 뭐."

"그렇지만 이대로라면 너는 삼류대학밖에 못 가."

"난 대학 안 갈지도 몰라."

"정말?"

"돈 드니까."

"너 가난하니?"

"그래."

"그렇지만 대학 안 가면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없어."

"올바른 인간이라면, 너 같은 놈?"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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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나 괴로워."

"그래, 그래. 그거 참 좋은 일이야."

이야기가 안 된다. 연애에 가장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걸 확신한다. 의논이 되지 않는다. 피로 연결된 사람이 연애 의논 상대로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낭만이라는 것과는 가장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창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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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도 시차가 있어.

다지마가 말한 가타야마의 이야기란 이런 거다. 그가 읽은 책에 나오는 말인데 인간이란 원래 25시간을 하루 주기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24시간의 주기에 맞추다보면 한 시간의 차이가 생긴다. 그럼 이 한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식사나 일이나 놀이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몸을 속이고 시간을 잘게잘게 쪼개 맞추어가기 때문에 어느덧 적응하게 된다. 그러나 그 중에는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몸을 속이는 데 실패하고 불면증에 걸리든지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은 태어난 후로 줄곧 시차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했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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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불만, 그게 뭔데? 도대체 무슨 욕구가 그렇게 쌓였어? 육체, 아니면 정신?"

나는 대답하기 어려워 그냥 엄마를 쳐다보기만 했다. 해소되지 않은 욕구라도 쌓였는지 새삼 생각해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요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운동으로 해소하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섹스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야. 왠지 모르지만 주위환경과 나 자신이 맞지 않아. 나만 붕 떠 있는 느낌이야."

"그건 옛날부터 그랬잖니."

"어릴 때와는 다른 느낌이야. 어릴 때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나를 넣어주지 않아 발버둥쳤지만, 지금은 아냐. 주위에 좋은 사람은 많이 있어.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너무 답답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데도 도무지 기분이 나지 않아. 그것도 누구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 그걸 잘 알고 있으니까 발산시킬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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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랑 같잖아. 자연스러움을 연기하고 있잖아. 사실은 너도,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잖아. 무지하게 우월감을 품고 있으면서 일부러 멍청한 듯이 행동하잖아. 네 쪽이 훨씬 더 그럴듯하게 연기하고 있어. 넌 아주 자유로워 보여. 난 그걸 좋아했어. 다른 애들처럼 이런저런 틀을 만들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언제나 자유롭다는 건 진짜로 자유롭지 않은 거라고. 나도 마찬가지지. 네가 말한 그대로야.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를 좋아해.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이 나의 취미야. 어중간하게 자유인 흉내 따위는 내지 않아."

다른 사람과는 다른 무슨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나는 그녀의 말을 되씹어보았다. 나야말로 자연스러움을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변형된 아부를 몸에 가득 담고 다닌 건 아니었을까. 아부나 작위는 싫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걸 너무도 멀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덮어쓰고 만 것은 아닐까. 사람들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아부를.

인간에게는 시선을 받아들이는 안테나가 붙어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자기 자신의 시선을 받으면 사람은 반드시 아부라는 독을 생산해낸다. 나는 그 독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를 새각해보아야만 했다. 모모코나 어머니가 시원스러운 것은 그런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언제나 명확히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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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한다. 나는 그날 밤 잠들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런 일로 고민하기에는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인간관계가 지금보다 더 중요했고, 자신이 무얼 하고 살아왔는지, 지금부터 무얼 할 것인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많은 것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의 시간은 나의 보폭과 똑같이 움직였다. 모모코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나는 몸에 너무 잘 맞는 옷을 입고 성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뒤틀려버렸다. 나는,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다. 나와 나를 감싸고 있는 옷 사이에서 공기가 팽창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걸 메울 수 있을까. 나를 고뇌하게 하는 무거운 공기의 베일은 진공청소기 같은 걸로 빨아들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다. 진공청소기를 갖다대고 그곳을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무의식적인 행위를 잘 해치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고뇌하면 어때, 하고 나는 당당해질 수가 없다. 구로가와 레이코가 지적한 대로, 그것이 어떤 종류의 역겨움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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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이 선생은 기분 나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기분이 야릇해져 혼자 웃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왜 지금에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 하다니.

아버지가 없고, 집이 가난하고 공부를 못하는 것을 치부로 여기지 않는 도키다 히데미는 매우 쿨하다. 공부보다는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더 많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을 한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대학을 왜 가는지는 중요치 않다. 아니 대학에 가야 그나마 아직 찾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 뚜렷하게 배우고 싶은 그 무엇인가와 자신이 하고 싶은것을 알 수 있어서. 과연?

히데미는 특이한 가족구성과 가족들덕분에 독특한(일반적으로 보기에 독특한것이지 어쩌면 가장 일반적이어야 할) 가치관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가며 자란다. 그 와중에 부딪히고 겪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사색한다.

단지 대학을 가기위해서가, 대학을 못가면 사람 대접을 못받을까봐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찾는 것을 얻고자 대학에 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온전히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어머니. 매번 고민할때마다 자신의 주관을 주입시켜 타이르거나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할아버지.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찾다보면 책의 첫부분부터 마지막까지 쭉 모두다 라고 할 만큼의 책. 고뇌의 핵심을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끄집어낸다.

유쾌하고 즐거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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