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문학을 일상 생활 속에 심고, 대중과 인문학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취지로 인문학의 뼈대인 문,사, 철을 전공한 학자와 문인, 대중이 함께 우리 역사 속 주요 인물들의 삶의 현장을 답사하고 서로의 체험을 교감하는 인문학 대중화 사업인 '길 위의 인문학' 강의와 답사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신문사에서 답사 진행 당시 폭발적 인기를 끌어 엄청난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지원자들이 많았다 한다.

일단 책 날개의 저자 사진들을 보면 어쩌면 이렇게 보석같은 분들을 잘 섭외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이이화, 정민, 구효서, 한승원님의 성함이 보여 선뜻 책에 빠져들 수 있었다.

목차 순으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1부·'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편에서는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우리 사상사의 준봉이라할 선생들과 김이재,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허균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약간 전문서 요약 발췌본 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라고 보면 되겠다. 2부 '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편에서는 강화도, 남한산성, 강릉 옛길, 금강, 양동마을과 향단이란 공간과 역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1부에 비해 개인적 소회나 답사기적 성격을 보이는 글이 꽤 있는 편이다.

사실, 나는 읽어가면서 조금 실망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기대와 약간 달랐기 때문이다.나는 '사람의 자취와 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이라고 하여, 선인들이 머문 공간과 그의 사상과의 관계, 어느 특정한 공간에 새겨진 역사 이야기가 좀더 깊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벼운 수필이나 여행기같은 글도 있어서, 책 전체적으로 필자에 따라 글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느낌이다. 이는 이 책의 단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어떤 독자가 읽든지간에 책 전체를 놓고 보면 어떤 필자의 글이든 독자의 수준에 맞거나 마음에 드는 글은 꼭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지리산과 남명 조식의 시와 사상을 같이 말씀해주신 최석기 선생님의 글과 다산선생의 강진 유배지에 따라 그의 삶과 시문, 인간 관계를 이야기해주신 정민 선생님의 글이 좋았다. 다른 글에 비해 수준이 우월했다는 말이 아니라, 내 스타일에 맞았다는 말이다. 나는 그런 글이 좋다. 아래에 인용했듯, 자연을 보며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읽고, 과거 역사를 보고 현재를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글 말이다.

남명은 , 눈앞의 산수를 통해 역사의 아픔과 세상의 아픔까지 읽어냈다.
그는 유람하면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그리고 역사 속의 고인을 보고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라
(看水看山看人看世)"고 했다 . 나는 이 여덟 자를 남명의 산수유람관으로 적출해, 산수를 보는 잠명(箴銘)으로 삼고 있다.

본문 75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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