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에 들고 있던 시뻘건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었다. 제 꼬리를 삼키며 완결되는 뱀, 시작과 끝을 동시에 잠그는 원. 빠져나갈 구멍도, 구원도 없는 세계에 독자인 나까지 가두는 기묘한 구조였다.

책을 읽기 전, 순환적 소설이라는 점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반전을 맞을 준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첫 페이지가 그대로 돌아왔을 때의 충격은 따로였다. 추리소설의 반전이 퍼즐을 맞추는 감각이라면, 사탄탱고의 마지막은 닫혀버린 문 앞에 서서 무기력에 잠식되는 느낌에 가깝다.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소설이 ‘닫히는’ 순간이었다.

* * *

이야기의 배경은 1980년대 헝가리 집단 농장 붕괴 이후라지만, 사실 그런 배경 지식은 필수적이지 않다. 시대가 달라도 붕괴 이후의 삶은 비슷한 양상을 반복한다. 소설 곳곳에는 음울한 기운이 내려앉아 있다. 감정적 우울이라기보다, 흑백 사진처럼 세계 전체에 깔린 탁한 공기 같은 우울이다.

이 음침한 공간에서 순수한 것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회색으로 물든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이리미아시의 말에 휘둘리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가 특별히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모두가 지금의 폐허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인 나도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리미아시의 등장에 긴장하고, 기대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고를 칠 것 같았고, 그 행동이 이 침체된 세계에 균열을 내줄 것만 같았다. 설사 그것이 파멸로 향하더라도, 변화가 없는 정체보다 낫다는 막연한 기대.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진다. 그는 사라지지도 않고, 특별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을 각자의 구석으로 흩어놓고 연결을 끊어낸다. 마치 자신만의 거미줄을 치듯이. 하지만 이 거미줄조차 이리미아시만의 것이 아니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특별할 것 없는 회색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실타래는 결국 ‘의사’에게로 모인다. 그는 집을 완전히 외부와 차단한 채 신적인 위치에서 마을 사람들을 책 속 세계에 묶어두는 존재가 된다. 시작과 끝을 울리는 종소리만 허공에 맴돌 뿐이다. 그런데 그 종소리가 실제일까? 아니면 단지 믿고 싶은 환청일까?

* * *

사탄탱고가 해피엔딩이 아님을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어느새 이리미아시에게 구원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망가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살아 있음’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보잘것없는 장기말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텍스트는 제 꼬리를 삼키듯 완결되었고, 책이 끝난 뒤 남는 독자의 좌절감까지가 이 소설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소설이 서늘한 이유는, 너무나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헝가리 1980년대와 한국 2020년대는 전혀 다른 시대처럼 보여도, 인간의 삶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각자의 그늘을 품고, 대단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방식은 지금도 같다. 소설 속 벌레의 폐쇄적인 8자 비행처럼, 우리 역시 어딘가 갇힌 듯 살아간다. ‘자물쇠를 바꿔다는 일일 뿐’이라는 문장이 가볍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독자인 내가 이리미아시를 점차 믿게 된 이유도 그의 말 속에 삶의 본질이 스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시간이 흐르며 ‘신을 믿지 않기로 결정한’ 인간이며, 인간의 고유성 너머 보편적 생명의 층위를 바라보게 된 존재다. 그 시야는 허무하고, 차갑다.

“난 예전엔 잘못 생각했어.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네. 나와 벌레, 벌레와 강물, 강물과 강을 넘어가는 고함 소리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건 공허하고 의미가 없는 거야. 뿌리칠 수 없는 구속과 시간을 뛰어넘은 대담한 도약 사이에서, 영원히 실패하는 감각이 아닌 오로지 환상만이 우리로 하여금 비참한 구덩이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끔 유혹하지. 하지만 도망칠 길은 없어, 귀 늘어진 양반!”

“사람들은 난로를 껴안고 앉아 봄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아. 날이 저물 때까지 창가에서 어정거리다가 그다음엔 먹고 마시고 솜털 이불 아래서 껴안고 잠이 들지. 이때쯤 사람들은 인생이 잘못되어간다고 느껴.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싶을 때는 아이들이나 고양이를 때리면서 좀 더 견뎌내지. 그렇게들 사는 거야, 처진 귀 양반!”

그렇다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허망함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세 가지였다.

하나, 기억과 기록의 양면성 위에서 줄타기

기억은 인간을 구원하기도 하고, 폐쇄성 속에 가두기도 한다. 의사의 기록은 잿빛 세계를 영구한 형태로 남겨버렸다. 이것이 축복일까, 저주일까.

둘, 수동성을 알아채기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 채 메시아만 기다린다. 그들의 비자발성은 이리미아시의 모호한 말들처럼 실체가 희미하지만, 이상하게 믿고 싶어진다. 나 역시 종종 누군가가 짜 놓은 길을 따라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셋, 현실을 받아들이기

인간은 삶이라는 굴레를 입은 이상, 온전한 ‘자유’에는 도달할 수 없다. 무한히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다. 책의 서문에 쓰인 “차라리 기다리며 만나지 않겠다”는 문장과 궤를 같이 한다. 기다리기는 하지만, 만나지는 못한다. 추구하기는 하지만, 이르지는 못한다. 그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한계를 수용한다고 해서, 내가 이미 덫에 갇혀있는 존재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삶이 더 나은 무엇으로 갑자기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실체를 알 수 없어 불길하기만 한 무엇이 아닌, 관측 가능한 대상이 된다. 사실 이건 굉장히 큰 발전이다.

내게 있어 ‘사탄탱고‘는 묵시록이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소설의 문이 닫힐 때 삶이라는 굴레가 어떻게 완벽하게 순환하는 원의 형태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새어나올 틈도, 파고들 틈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 이것은 책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내 삶을 반영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사탄탱고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삶을 고양시키는 픽션이기 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삶의 허망함을 낱낱이 그려내는 다큐에 가까웠기에 오히려 나라는 인간이 삶을 어떤 태도로 보아야 좋을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삶은 허망한 것이니 되는 대로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을까. 사는 일에 별 의미가 없다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과.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밖에 없다. 삶은 허무하다고 해도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하는 생각들이.

사이 좋게 줄지어 떠오르던 책이었다.

이 양면성은 앞으로도 생을 이어가는 내내 저울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때로는 폐쇄성에 좌절하고, 때로는 위로 받으리라. 그리하여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강약을 반복하는 탱고의 스텝처럼, 삶도 반복되며 이어지겠지.

#연말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