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 마주]는 66회를 맞은 ‘2021년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이다. 현대문학상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국내문학상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그때 그 소설] 시리즈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마침 수상집이 눈에 띄이길래 선뜻 읽게 되었다. 헌데 수상 작가를 헷갈렸다. 표제작이기도 한 수상작을 쓴 작가는 최은미였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라 생각했는데 책에 나와 있는 작가 소개를 보니 처음 접하는 작가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최은영 작가나 최영미 시인과 혼동했던 것 같다. 최은영 작가와 최영미 시인의 이름 한 글자씩을 취해 조합하니 최은미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기억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새삼스레 느낀다.

책에는 최은미 작가의 수상작 <여기 우리 마주>와 그녀의 자선작 <보내는 이>, 그리고 수상후보작 7편 등 총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여기 우리 마주>는 수상작이란 이유 말고도 현재의 감염병 사태를 소재로 하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코로나19 시국에서 일하는 엄마/아내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 은채의 아토피 때문에 천연비누를 만들어 쓰다 하나,둘 지인에게 선물한 것이 계기가 되어 홈 공방을 시작한 화자는 9년여 만인 2020년 2월 상가를 임차하여 공방을 연다. 작가는 감염병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방의 운영이 어려워지는 과정을 화자의 말을 통해 서술한다. 또한 개학이 계속 연기되면서 온라인 수업도중 사적공간인 집안의 환부가 드러나는 과정을 수미의 딸 서하를 통해 묘사한다. 중소학원의 기사인 수미와 그녀의 남편 사이의 갈등이 수업 중인 서하의 마이크를 타고 공개된 것이다. 마스크를 쓴 생활 속에서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맞물리면서 아슬아슬한 경계를 드나드는 삶이 이어진다. 결국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은 화자는 선별진료소로 가서 검사문항에 답을 하자 위험대상으로 분류되었고, 검사결과 음성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된다. 그때 수미는 이미 67번 확진자가 되어있었다.

요즘 코로나19의 재유행으로 인한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면서 핸드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요란하다.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겹치는 사람들에게 진료소를 찾아 검사를 당부하는 문자들이 쉼없이 들어온다. 사람들의 일탈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간다. 겪어보지 못한 재난 앞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익숙한 관계의 거리들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무엇이 답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감염병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염병이라는 새로운 재난이 그 이전의 재난적 상황들을 어떻게 밀어내는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소설로 풀어낸 작품을 처음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작가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7편의 수상후보작 중 가장 마음에 들어온 작품은 윤성희의 <네모난 기억>이었다. 민정과 정민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다. 각기 자신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 두 사람은 몇 년에 걸쳐 빈번한 사건과 사고로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다. 만남은 우연히도 모두 장례식장에서였고, 그 만남은 나중을 약속하는 만남이 아니었기에 헤어짐은 당연했다. 그렇게 만난 어느 날 정민은 민정에게 한번만 더 장례식장에서 만나면 사귀자고 한다. 그 후 민정의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고, 정민은 결혼을 했지만 3년 만에 이혼을 하였다. 민정이 웹툰 만화를 연재하고 우연히 그것을 본 정민은 댓글을 달았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게 된다. ‘다시 한번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면 사귀는 거 잊지 않았냐?’고 묻는 정민, ‘안 잊었다’고 대답하는 민정.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걷는 정민을 따라가던 민정이 다음 버스 정류장에 이르자 몇 번 버스를 타느냐고 묻는다. 정민이 저쪽을 보라며 손가락질 한다. 민정은 정민이 가리키는 곳을 본다. 그곳은 한 종합병원의 후문이었고 장례식장의 불빛이 보인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두 사람이 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나는 모습이 마치 한편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을 살아내느라 힘들게 지금에 이르렀지만 웬지 힘차게 살아갈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수상작가와 마찬가지로 수상후보작가 모두 처음 접하는 작가들이다. 문학상 수상집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작가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우연히 읽은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서 최은미와 윤성희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모처럼 기분 좋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