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 유아동/청소년/전집

지나고
- 작성일
- 2018.6.5
구미호 식당
- 글쓴이
- 박현숙 저
특별한서재
“죽기 일주일 전쯤 죽는 날을 미리 알려주면 참 좋을 텐데요. 그럼 살살 준비할 수 있잖아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저씨가 쓰윽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래. 살면서 그걸 모른다는 게 함정이지.”
“만약 말이에요. 아저씨와 내가 죽기 전으로 돌아간다고 쳐요. 누군가 ‘일주일 후에 당신이 죽습니다’ 이러고 알려준다면 아저씨는 일주일 동안 뭘 하겠어요?” (p. 167)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고? 오늘이 죽기 일주일 전일지도 모른다. 화자 도영이의 말대로 현대인은 언제나 죽음에 노출되어 있으니까 말이다.(p. 165)『구미호 식당』은 삶이 아니라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열다섯 살인 도영이는 스쿠터를 타다가 죽는다. 망각의 강을 넘으면 이승과 저승이 완전히 갈라지는데, 넘기 직전에 서호를 만난다. 서호는 저승으로 가서 피가 차갑게 식기 전에 뜨거운 피 한 모금을 달라고 한다. 대신 사십구일 동안 이승에 머무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는데.. 우연히 나란히 걷던 아저씨는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와 달리 도영이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어차피 사람들 모두 갑자기 죽는 거 아닌가요? 인사를 제대로 하고 죽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귀찮게 뭐 하러 돌아가요?”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정리 싹하고 죽는 사람들 많아. 그러지 말고 내 말 들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 말 들어. 후회할 일 없으니까.” (p. 13)
이 소설의 주제가 후회하지 않는 삶이다. 청소년 소설이라서 그런지 한 남자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알려 준다.
“(상략) 살아가며 행복과 불행,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오로지 자신들의 몫이야. 제대로 살면 행복하지. 제대로 산다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 삶이지.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마음을 열고 살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어. 마음을 열면 나에게는 물론 모두에게 너그러워지고 여러 각도에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기거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거라고 멍청한 생각들을 하지. 그러느라 죽을 때 꼭 후회해. 후회해도 소용없는 순간에 말이야. 아아 멍청한 것들. 어때, 너희들은 멍청한 부류에 속하지 않았나?” (p. 237~ 238)
도영이와 아저씨 역시 멍청한 부류에 속했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이라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행운을 잡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소설에서 말하는 행운은 절대 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마음을 열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지금.『구미호 식당』은 읽을수록 뒤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한마디로 재밌다. 다만, 갈등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다.(단편집『기다려』도 그러한데, 박현숙 작가의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데이트 폭력이나 언어폭력의 심각성까지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것 같아 아쉽다. 폭력은 아무리 후회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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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