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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글쓴이
유시민 저
돌베개
평균
별점8.8 (271)
옥이

유시민의 신작, <역사의 역사>의 주제는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연구의 변모와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초점을 맞추는 대상은 유명한 역사서 고전과 그 역사서를 남긴 저자들이다. 일단 역사라는 주제를 택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직접 다루는 대목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언급되기는 하는데, 주요 역사서의 몇몇 대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전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라는 학문의 본질을 명쾌하게 꿰뚫으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물 흐르는 듯 쉽고 재미있게 관련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역사의 역사>는 일단 사마천의 사기, 헤로도토스와 투키티데스의 저서 등 대표적인 역사서와 그 저자들을 옴니버스 식처럼 분류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챕터마가 특정 역사서나 역사 연구 사조, 그리고 대표적인 역사가들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성에서는 대개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선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여러 역사서의 역사적 의미와 특징을 소개하는 것을 떠나서, 현대 시점의 사회인으로서 바라본 옛 역사 이야기의 관점과 평가 등에 대해서 흥미진진하면서 맛깔난 이야기를 도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역사서와 역사가들을 평가한다. 하지만 일차원적인 평가는 극단적으로 지양한다. 동시에 선악이분법 수준의 일차원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보다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전으로 손꼽히는 옛날 글을 현대인의 관점에서 기술적으로 빈약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기는 손쉽다. 과학기술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발전했다면, 자연스럽게 옛 방식과 옛 물건은 낡아 보이고 , 허점이 많이 보이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아무런 흠이 없는 절대적인 존재처럼 숭상하기는 더욱 쉽다. 그저 칭송에 칭송을 거듭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유시민은 둘 중 어느 쪽에서 기울어지지 않았다. 대신 중도일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적인 세 번째 길을 택했다. 옛 저작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은 노력을 호평하는 일을 동시에 하면서, 더욱 발전적인 역사 연구와 고찰에 대한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챕터, 헤로도토스와 투키티데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부터 이런 특징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현대 관점에서는 역사책이라기보다 설화 채록집에 더욱 가깝다는 평을 받을 것이다. 여러 나라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막상 저자가 직접 답사한 지역이 별로 없을 뿐더러, 외국인이나 외국을 다녀온 사람들 등에게서 여기저기서 들었다는 이야기를 교차검증 없이 수록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흥미롭고 신기한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는 있지만, 현대 학계 기준에서 엄밀한 의미의 역사서라고 하기에는 힘들다.


그리고 투키티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현대 학계 관점에서는 역사서라기보다, 고증이 뛰어난 역사소설쯤으로 분류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인물의 연설 등을 다른 자료에서 직접 옮기는 대신 저자가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조합하고 재구성한 부분이 많다. 막상 그런 부분에는 따로 출처를 붙이지도 않아서, 실제로 전문 기록이 존재하는 연설인지 저자가 적절하게 재조립한 연설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쓰여진 글을 엄밀한 역사서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이런 부분을 가차없이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명의 저작은 허점이 많고 빈약하며, 오늘날 일부러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일까?

유시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고대 그리스의 범위를 벗어난 외국 이야기를 다양하게 채집하기 위해 노력했고,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설화적 이야기도 일일이 출전을 달아서 소개했다. 투키티데스는 여러 자료들을 무비판적으로 복제하고 전달하는 대신, 현실적으로 검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서 정련된 이야기를 뽑아냈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이후 역사학계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맞닿아 있으며, 꾸준히 발전하고 단련된 테마이기도 하다.


<역사의 역사>는 이처럼, 기술적으로 발전한 현대의 기준으로 옛 저술을 평가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사마천의 <사기>는 동시대 유럽의 역사서에 비해서 훨씬 방대한 내용을 훨씬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작이지만, 이 대목을 말하면서 동양이 서양보다 앞섰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은 뜬금없이 이슬람교를 칭송하는 내용이 수시로 출몰하는 것을 비롯해서, 왕조에는 100여년의 흥망주기가 태생적으로 존재한다는 식의 무리수가 여럿 있다. 이런 부분을 깎아내리면서 평가절하하거나, 정교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이슬람교를 폄하하는 내용을 덧붙이거나, 혹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말을 되뇌면서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더없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은 이븐 할둔이 살았던 14세기 이슬람 세계의 사회와 당대 역사를 말하면서, 당대의 정교일치 이슬람 사회에서 수시로 왕조가 바뀌던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오히려 그런 점을 내세워서 히븐 할둔과 그 저작을 깎아내리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대목은 마르크스의 역사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최고조에 달한다. 마르크스가 내세운 역사학 이론이나 예측은 21세기 현대에서는 들어맞는 대목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다.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만들어진 여러 이론들도 현재는 상당수 사멸되었다. 탄압받아서 퇴치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학문적 성과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유시민은 굳이 한 챕터를 할애해서 마르크스에 대해 말한다. 이 챕터의 상당 부분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저술을 논박하는 데 할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의미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마르크스의 문제의식과 비관적 미래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여러 부문에서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역사학은 과거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회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랑케와 카를 다룬 챕터는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배운 사람에게 독특한 재미를 안겨준다. 역사학 이론의 첫머리는 거의 예외없이 랑케와 카를 대조하면서 시작한다. 랑케는 주관을 극도로 배제한, 철저하게 객관적인 역사기록을 추구했다. 반면에 카는 역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그 순간부터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체가 바로 역사라는 논조였다. 랑케와 카를 대조하는 것에 워낙 익숙해서, <역사의 역사>에서는 두 명을 각각의 챕터에서 따로 다루는 것이 좀 이상하게 여겨질 지경이었지만, 책을 읽자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랑케도, 카도 자신만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각자의 특징이 뚜렷하기 때문이었다.


랑케의 역사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마르크스의 역사학보다 더 심하게 잊혀졌다. 역사학 이론의 첫머리에서 언급되는 것 외에, 랑케의 저작 중에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다. 하지만 그것은 랑케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랑케는 자신이 만든 방법론 내에서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최선의 결과를 뽑아냈다. 하지만 역사 연구의 근본 원천이 되는 옛 사료에서부터 필연적으로 작성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옛 기록을 쓴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했기에, 그 단계에서부터 주관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관이 개입된 자료를 그대로 인용한다면 주관이 반영된 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럽 역사학계가 이 명제를 깨달으면서, 역사학은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카는 여러 모로 랑케와 대조된다. 카는 역사는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전제는 역사학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주관적인 면모를 파악하고 그 점까지 반영하는 것이 역사학이라는 새로운 명제로 이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써낸 갖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주관적인 면모를 최대한 덜어내고 교차검증으로 확인되는 사실을 추출해서 재구성하여 역사적 사건에 다가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구자 개인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것을 타인이 명심하는 것이 바로 카의 역사 이야기다. 여러 사람들이 자신만의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역사학 연구에서는 순수한 의미의 학문 이외의 요소가 개입할 때가 종종 있다. 구한말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학은 역사학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도구처럼 여겼다. 이런 면모는 장단점을 동시에 지녔는데,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벗어나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설화나 잊혀진 사료들을 발굴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대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역사서 서술을 끼워맞추는 경향이 나타났던 것이다.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신 새로운 한계를 만들어버린 격이다. 그리고 그 민족주의 역사학의 한계와 맹점을 지적하고 보완하고 새롭게 대체하면서, 한국 역사학 연구는 더한층 발전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일종의 학문 통섭을 다룬다. 문명과 역사를 직접 결부시키는 새로운 융합 시도가 나타나는가 하면, 아예 과학 발전과 역사 연구를 통합하듯이 동시에 다루기도 한다. <역사의 역사>는 이런 시도가 역사학의 테두리 안에 갇혔던 시절의 역사학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과, 두 가지 영역을 동시에 다루면서 한 가지 영역만 다룰 때보다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고 경직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짚어낸다.


완벽하게 완성된 역사학이란 있을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완벽해 보이는 역사서는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때까지 수많은 역사학 고전들이 그랬듯이,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고, 예전에는 연구하지 못했던 영역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되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 나올 것이다. 옛 것이 반박되고 새로운 것이 출현하며 기존 서술이 물갈이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역사학을 추구하면서, 기존 역사서에서 보다 결점이 적은 새로운 역사서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때까지 수많은 역사가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서 명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그 저술들이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평가를 받게 된 후대에도 고전으로 남아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옛 역사서의 고전들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짚어내고, 본받을 점은 본받고 비판할 점은 비판하며,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부분을 호평하고 폄하하지 않으면서, 멈추지도 말고 앞으로 나아가고,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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