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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연
- 작성일
- 2019.3.9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글쓴이
- 올리버 색스 저
알마

책을 읽는 동안 무서웠다. 이런 병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저자의 깔끔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편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각 환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나에게도 일어날까 무서웠다. 어릴
때 병을 앓아 애초에 장애가 있는 삶이 생활이었던 사람들도 있지만, 나이 들어 뒤늦게 자신을 잃는 환자들을
보니, 무섭고 걱정이 되었다. 뻔하지만 나의 건강한 신체에
감사하며, 소중히 해야 함을 새삼 깨달았다.
신경학자가 쓴 이 책은 그가 진료했던 환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일반인들도 접근하기에 좋게 썼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볼 수 있는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틱’을 가진 경우도 있고(특히 아이들),
자폐아 문제는 여러 차례 조명되기도 했다. (서번트 신드롬이라는 신비로움을 등에 업었지만..) 흥미롭기도 하고, 마냥 낯선 분야가 아니라 더 관심이 갈만한
책이다.
뇌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알아 낼 수 있을까? 일반 사람들도 뇌가 중요하며, 비밀스러운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앞으로 1.4킬로그램의 신비로움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되진 않을 듯하다. 인간들은 결국 그 신비로움을 더 이상 신비롭지 않은 무언가로 만들어 우리의 삶을 바꿀거라 생각한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를 기준으로 앞으로의 미래가 많이 바뀔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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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병의 연구와 그 사람의 주체성에 대한 연구가 분리될 수
없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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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중략)
단 하나의 생명체,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다. (24)
저자의 자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단지 한 명의 치료해야
할 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한다는 점이었다. 인용한
부분들은 맥락으로 볼 때 그는 신경학자로 한정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런 신경증적인 증상이 나타난 것은
어떤 하나의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세상 일은 단 하나의 인과 관계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가 발생할 수 없는 상황들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감기에
걸린 것은 단순히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사실로 볼 것이 아니라, 손을 안 씻었을 수도, 감염 되었을 수도, 혹은 건조한 상황에서 생활했을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치료가 일어나기 전에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 의사는 그런 것을 한다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의사가 아니니까 아예 불가능하겠지만) 한 명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그 주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는, 의사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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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형제를 테스트한다는 생각과 연구를 위한 ‘대상’으로 삼는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깊숙한 내면 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춘다든지 시험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려고 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조용히 관찰해야 한다.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며 둘이서 조용히 무얼 하고 있는지를, 설령 그 모든 것이 기묘하게 여겨질지라도 오히려 공감하는 마음의 자세로 지켜보아야 할 따름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겠지만, 거기에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을 신기한 것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필시 근원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어떤 힘이요, 심연이다. 그들을 안 지도 벌써
18년이 되었지만 내게 여전히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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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환자는 원래 좀처럼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립적으로 살아갈 ‘운명’에 놓인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에게는 독창성이 있다. 우리가 만일 그들의 내면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들의 독창성은 내부에서 생긴 것,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을 알면 알수록, 그들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완전히 내부로 향하는 존재, 독창성이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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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같은 존재인 인간, 기존 문화에 동화될
수 없는 인간, 본토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발붙일 곳이 있을까? 과연 ‘본토’가 그들을
특수한 존재로 받아들여줄까? (379)
자폐증 환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중증 정신병(?) 환자들도 그렇겠지만,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잘 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나오기 꺼려하는
이유도 있을테고, 사회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여주는 분위기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투렛 증후군을 지닌 이들도 마찬가지일 듯.) 내가 생각하는 그들은
고요하고, 고독한 이들이다. 그 어떤 누구보다 고독함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에게 내몰려서 혼자 된 외로운 그들이 아니라, 그저 그들 스스로 문을 닫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자의든, 병적인 요소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힘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으리라. 고독함을 기반으로 생긴 그들의 독창성은 그런 고독함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쉽사리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입 대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없는데, 그들을 철저히 감추고 있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 책에 나온 쌍둥이 형제는 ‘본토’에 적응시키기 위해 강제로 함께 생활하던 섬을 폭파시켜 ‘본토’로 영입시켰다. 그리고
그들만의 아름다운 섬은 사라졌고,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힘든 하등한 인간 둘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그들의 존엄성을 살려 주는가? 그들은 그들만이 지니는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살아 있는가? 그저
살려두기만 하면 그 존재로서의 가치가 살아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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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법 (173)
저자는 약이 듣느냐 안 듣느냐,
그리고 그 약을 통해 어떤 것까지 가능해지느냐의 의도로 한 말이지만, 이 한 구절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점을 생각해보고, 적용할 수 있으리라. 아픔도, 질병도, 그에 대한 치유도, 치료도
그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가능한 기적이리라. 그리고 그 기적이라는 것이 손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씩 모으고 모아서 가능하게 만든 무언가가 되리라는 것이다.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위한 순간을 위해 모아야 하는 것들을 잘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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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