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비
  1. 문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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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지구에서 한아뿐
글쓴이
정세랑 저
난다
평균
별점8.7 (519)
금비

 

정세랑의 책 제목들은 꾸밈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직관적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하다고 해야 하나. 문학이라면, 소설이라면 나오는 제목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예를 들어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청소년소설인가? 할 정도로 무언가 어른스럽지(?) 못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팟캐스트에서 정세랑 작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끝까지 사보지 않았을 책 제목이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고 의외의 재미와 한국식 문학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 같은 소설이어서 가슴 한구석에 착 달라붙었다. 그리고 만난 지구에서 한아뿐’. 이번에는 제목과 동시에 책 표지가 정세랑의 두 번째 책을 고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터뷰에서 등장인물의 이름 정하기에서 주변 인물들의 이름을 쓴다고 했는데 안은영도 그렇고 한아도 그렇고 모두 주변의 인물이다. 한아는 작가가 만난 한아들이 죄다 괜찮은 사람들이어서 주인공 이름으로 쓰고 싶었단다. ‘하나는 많은데 한아는 만나보질 못했다. 정세랑은 한 명도 만나보지 못한 나와 달리 여러 명의 한아를 만났다니!

 

그 어떤 줄거리나 소개글을 보지 못하고 만난 소설이었다. 외계인이 나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억지스럽지 않다고 느낀 건 그만큼 작가가 잘 썼다는 것이겠지?

 

내 인스타에 올린 감상평을 여기에 옮긴다.

읽는 동안 몽글몽글한 방울들이 하나씩 불어나더니 나중엔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연애소설이라니! 이렇게 우주적인 사랑 소설이라니!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현실이라는 경계에 가두지 않는다. 나라면 생각하지 못할 세상에 나를 놀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고맙다. 세상에! 외계인, 그것도 광물 덩어리랑 사랑하다니!!

 

작가의 가치지향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대안들을 곳곳에 넣어둔 장치들을 통해 느낀다. 한아의 직업이 업사이클링 디자이너, 소박하게 표현하면 옷수선 가게(환생-지구를 사랑하는 옷가게) 주인이라는 점, 한아의 절친 유리의 남편이 패시브 건축사라는 점, 비건 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 결혼식은 스몰웨딩부터 신혼여행 과정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전우주적으로 생명을 연결한 설정 등을 늘어놓으니 무겁기만 할 것 같은데 경쾌한 소설이 완성되었다. 사랑스럽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공상과학적지만 결코 어색하지 않고 분홍분홍한 이 느낌!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가는 작가같다.

 

 

 

<옮김>-------------------------------------------------------- 

주영의 명치쯤이 관통당한 듯 아팠다. 마음이란 거, 육체의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하는구나. 주영은 한숨을 쉬었다. 뼈만 남는다 해도 아폴로라면 아주 특별할 거라고, 아주 특별히 아름다운 뼈일 거라고 생각했다. 뼈를 두드리면 실로폰처럼 소리가 날 거야. (69)

 

백날을 생각해봤자 답은 똑같을걸요. 어떤 특별한 사람은 행성 하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가 있어요.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한텐 엄청 분명한 문제예요. 난 따라갈 거야. 내 아티스트.” (118)

 

날아가지는 마, 그런 생각을 혼자 하고는 다시금 놀라는 한아였다. (1113)

 

, 망설임 농도가 낮은 사람이니까.” (135) _ 경민이 주영에 대해 분석

 

다시 여행하고 싶지는 않아? 공항에 오니까 여행 싫어하는 나도 막 그런 기분 드는데.”

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 마.” (137)

 

말씀은 감사한데, 전 한아랑 있을 시간이 부족해서요.” (141)

 

경민이 없는 동안, 한아는 간만의 여유를 즐겼다. 사실 이상한 긴장이 있었다. 외계인을 사귀다니 어쩐지 지구 대표가 된 것 같아서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쓰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길거리를 걷는 다른 연인들도 겉보기와 달리 한쪽이 멀리서 온 존재일 수 있지만, 어쨌든 지역구 정도는 대표하고 있지 않을까 했다. (141)

 

한아는 이제야 깨닫는 것이었는데, 한아만이 경민을 여기 붙잡아두던 유일한 닻이었는지 몰랐다. 닻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유약하고 가벼운 닻. 가진 게 없어 줄 것도 없었던 경민은 언제나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종국에는 지구를 떠나버린 거다. 한아의 사랑, 한아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그 모든 관계와 한 사람을 세계에 얽어매는 다정한 사슬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역부족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닻이 없는 경민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까?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나 거기까지 이르자, 한아는 떠나버린 경민에 대한 원망을 어느 정도 버릴 수 있었다.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거야.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146-147)_

 

*광막함에 대한 내용. 얼음 혹성에 사는 무당벌레 외계인의 마지막 장면.

우주의 광막함을 견디고 싶지 않고, 긴 여행에 필요한 한정된 자원을 미래 세대에게 양보하고 싶대,”

한아는 이후 채 겪어보지 않은 광막함에 대해 계속 떠올렸고, 우주가 언제나 광막한 곳이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마음속에도 그것이 일부 녹아들지 않았을까 여기게 되었다. 누군가는 어렴풋하게, 누군가는 살을 찔러오는 강렬함으로 안쪽의 춥고 비어 있는 공간을 더듬는 것이다. 얼음 무당벌레들이 지독하게 느끼는 편이었을 뿐, 우리는 모두 이 어둡고 넓고 차가운 곳에 점점이 던져져 있지 않은가? 부디 탈출한 자들이 더 오래 변하지 않을 보금자리에 잘 도착하기를.(161)

 

*35. 지구와 닮은 행성에 사는 광합성인(162-164)

한아에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바라보는 행성.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음. 광합성인들의 특징. 동물성을 일부 포기하는 방향으로 진화. 머리카락은 덩굴 줄기, 열두 개의 발가락들을 흙속에 집어 넣고 머리카락 잎사귀들이 넓게 벌어지면 광합성을 함. 눈만 있음. 말하기 싫어함. 수화나 필담. 방문객 싫어함. 말을 걸거나 각종 사건을 일으킴. 딱히 기록하지 않음.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낙서에 있는 걸 포착하기도 함. 전 우주에 도움이 되기에 저 별은 그대로 보존해주기로 우주 전체가 약속함.

 

경민은 한아만큼 한아의 신념을 사랑했다. 한아의 안에도 빛나는 암석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172)

 

*결혼식 진행 과정

 

*신혼여행: 몰디브와 베네치아. 물에 잠기면 볼 수 없는 곳. 항공 연료 소비 증가에 기여하고 싶지 않음.

몰디브의 해변에서 한아는 경민의 팔을 베고 누웠다. 사랑스러운 배우자의 얼굴을 보며 원래 그 주인과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았다. 한아는 그 얼굴이 아니라 얼굴 너머에 있는 존재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이 사랑은 혼란스럽지 않아, 입안으로 말했고 확신했다. 외부 슈트 없이 본연 그대로의 돌덩어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민아

한아는 익숙한 이름을 불렀지만 부를 때 이름의 주인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아에게 경민이란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처럼 여겨졌다. 아주 특별한 사랑을 이르는 말. 이제 그 사랑의 온전한 소유권은 이 눈앞의 존재에게 있었다. 경민은 인간처럼 잠이 드는 게 좋았다. 단순히 무의식에 접속하는 게 아니라, 정말 눈꺼풀을 감고 몸을 늘어뜨리는 행위를 모사하는 게 좋았다. 한아가 세상을 슬퍼하거나 아프게 생각하지 않고 편안히 잠들면 그 풀어진 표정을 보는 것도 좋았고, 그럴 때마다 지구에 날아온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 속에서 경민 역시 꿈결에 들어가면, 무의식으로 연결된 먼 곳의 속삭임이 경민의 행운을 축하해주었다. 경민은 오만해질 정도로 행복했다. 부럽지? 그러니까 너희들도 얼른 달려가. 하얗게 타는 발자국을 남기면서 열심히 달려가란 말이다.(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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