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쟁이
  1. 내 맘 속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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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글쓴이
김민섭 외 6명
웅진지식하우스
평균
별점9.7 (39)
분홍쟁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는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작가 초대 플랫폼 북크루’에서 진행한 ‘에세이 새벽 배송 서비스 [책장위고양이]’를 통해 주 7일 새벽 6시마다 구독자들의 메일함을 두드렸던 총 63편의 글을 모은 연작 에세이집이다.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일곱 명의 에세이스트가 각각의 주제에 맞춰 자신들의 기억 속 편린들을 깔끔하고 재치있는 문장과 내용으로 풀어냈다. 사실 에세이를 그리 선호하지 않기도 하고, 이 일곱 명의 작가들 중 그나마 들어본 이름은 남궁인 작가님(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음) 뿐이라 과연 어떤 내용들일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름만 들었던 남궁인 작가님은 생각보다 똘끼(?!)가 있는 데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신 듯한 느낌에 재미났다. 무엇보다 나에게 이런 아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글들이었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한 작가당 하나의 주제를 제시하고 그것에 맞춰 글을 쓰는 형식. 그저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첫 주제인 <고양이>에서 김민섭 작가님의 글에 심장을 강타당했다. 주말 점심, 운전을 하면서 돈가스 집으로 향하던 그는 교차로 중간에 상체만 일으킨 채 누워있는 고양이를 발견한다.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잠시 망설이는 사이 고양이를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다. 유턴을 해 다시 돌아가봤지만 고양이를 구할 수는 없게 된 상황. 조수석에 앉아있던 친구는 '아까 차를 세웠어야 했다'며 몇 번이나 그를 원망했고, 작가님은 뒤에 시내버스가 한 대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의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차마 구하지 못했던 고양이.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자신의 인생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거라 여전히 자책하면서 인생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저마다의 회전교차로에 진입하게 된다. 20대의 내가 마주한 그 교차로는 아주 컸고 갈림길도 많았다. 그게 반드시 취업이나 진학으로의 길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태도라든가 지향을 선택하는 더욱 중요한 길이 있다. 거기에 어떻게 진입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응당 자기 자신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예를 들어 '고양이를 구한다든가' 하는 일을 한다면, 내가 가야 할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p17

친구의 고양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적은 김혼비 작가님의 글도 아주 좋았다. 친구 D가 여행 간 사이 잠시 그의 고양이 토토를 맡아두었던 또 다른 친구. 뭔가에 화들짝 놀라 품 안에서 빠져나가 숲 속으로 사라진 그 고양이로 인해 여러 사람의 인생이 바뀔 위기에 처한다. D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D를 만나러 간 그 친구는, 오히려 D가 건네는 위로의 말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만다. 자신의 고양이를 잃어버린 슬픔도 컸을텐데, 그 고양이를 잃어버린 죄책감으로 평생을 괴로워할 친구를 먼저 걱정하는 D.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온몸이 찌릿거릴 정도의 큰 감동과 멋진 이야기였다.

남는 건 모진 상처와 자괴뿐일 걸 알면서도 감정에 휩쓸려 파탄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럼에도 절대 그 경계선을 넘지 않고 그 바깥에 단단하게 서서 호흡을 고르며 다른 걸 볼 줄 아는 사람이 있다. D는 그런 '어른'이었다.

p21

오늘 아침 첫째에게 또 독을 쏘고 만 나는, D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며 결국 또 발버둥을 치고 있다.

 

작가에 관해 쓴 문보영 작가님의 글도 재미있었다. 어떤 사람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한 뭉치의 두툼한 원고 뭉치로 보일 때 일기를 쓴다는 그. 그런데 그 순간을 경계해야 한단다. 자신에게 연필을 잡게 할 때 이 충동에 적당히 대응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연인 앞에서는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아도 뒤에서 연인에 대한 글을 쓰느라 대꾸도 잘 하지 못하는 웃픈 상황. 뒤이어 등장하는 한 문장에 그만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왜 나랑 안 놀아" 왜 맨날 글만 써" 사랑하는 자가 항의한다.

"나는 더 본질적으로 너랑 놀고 있는데?" 따위의 말을 하는 쓰레기가 되는 일이 없길 빈다......

p66

재미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라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마음을 치는 충격에 멍-해지기도 하고, 한 권의 책으로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다. 에세이가 이리 재미있을 줄이야. 이야기 맛집, 다채로운 감정 맛집이다! [책장위고양이] 두 번째 프로젝트도 진행되기를, 또 새로운 글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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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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