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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라비야
- 작성일
- 2021.1.17
인생의 숙제
- 글쓴이
- 백원달 저
피카(FIKA)
1
'남들처럼 살면 내 인생도 행복해지는 걸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기본 스펙(토익, 토스, 컴활, 워드 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꿈꾸는 길을 가기 위해 정진하고 정진했었다.
2014년,
그때 다짐했던 포부는 졸업과 복무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용케 꺾이지 않았다.
바야흐로 2021년, 새롭게 성큼 다가온 미래까지 달려왔다.
어쩌면 2015년 학군단에 합격했던 그 때부터 상상만 하며 아득하게 여겼던 시기. 언제 입단하고 언제 전역하냐 으쓱이던 그 생생함은 빛바래고, 그 너머의 전환점을 맞이하기 6개월 전인 지금. 나는 내면에서 휘볼아치는 회의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맞는 걸까?'
이런 약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솔직히,
나는 이런 걸 내 속에 담기도 싫었다.
하지만 계속 생각해본다.
막상 취업전선을 눈앞에 둔 지금 내 이력서는 이리도 깨끗하다. 남들은 다들 기본 스펙이라 일컫는 토익토스컴활한국사.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난 본질에 집중할 것이다' 힘주어 말하던 나는 왜, 그런 것도 없느냐는 어른의 물음에 가만히 다물고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하 지닌 바 능력이 일치하는 것인 법'이라 되뇌이던 시절이다. 나는 내 시간을 그렇게 조형했다.
하나의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 이것으로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얻을 것이라 기대했건만.
과연 그 목표는 정말 확고부동하였던가, 그리고 정말 나는 똑바로 달려가고 있었던가. 그 길은 확신과 자신감이 아니라, '미몽'과 '신기루'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을까.
막상 저 앞에 보이는 현실은 나더러 계속 뒤를 돌아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현실을 이겨낼 정도로 힘이 좋지 않은 나는 힘없이 뒤돌아봤다. 내가 지나온 길은 과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던가. 내 길을 만들며 왔노라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그저 헤매고 헤맬 뿐이던 미로이지 않았을까. 이제야 간신히 빠져나와 남들은 이미 지나고 없는 그 한복판에 덩그러니 도달한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다시, 그토록 외면하던 레이스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보다 앞선 이들의 뒤를 허겁지겁 좇아야 하는 걸까.
사회가 만들어놓은 길은 관념과 정의의 세계에선 꾸짖고 내팽개치며 버럭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과 생존의 순간 앞에선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현실의 불합리하고 잘못된 관행 앞에 꾸짖는다 한들, 그들이 나에게 밥을 먹여주는 일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선물처럼 도착한 한 권의 책이 있다.
'남들처럼 살면 내 인생도 행복해질까?'
진심으로 묻고 싶다. 그리고 제대로 대답하고 싶다.
'남들처럼 살아야만 하는 걸까?'
'그것이 맞는 걸까?'
사용한 표현은 비슷하지만 결은 다른 이 물음이 어쩌면 내게 단초를 줄지도 몰라.
나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2
(스포주의)
33살의 평범한 회사원 박유나.
그녀는 쳇바뀌처럼 반복되는 하루하루, 직장에서 시달리고 고된 몸으로 돌아온 집은 엉망이고 겨우겨우 씻고 정리하면 자야 할 시간이라 급하게 SNS나 만지작거리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일상.
여기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모른다.
변화의 시작은 작은 결심에서 시작되었다.
'집을 제대로 청소해볼까?'
(...)청소와 정리를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것들과 재회할 때가 있다.(머리끈이라든가;;)
버리진 않았지만 잊어버린 것들과 만나는 시간
pp.63-64
그리고 발견하게 되는 것은, 처음 이사 올 때 옷장 한구석에 박아두었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
세상살이에 휩쓸리다보니 어느덧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잊어버렸노라 생각하던 그녀는 10살 때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남이 자기 과거를 보는 것을 보는 나조차도 이렇게 웃음이 매달리는디
하지만 자신이 과거 무엇을 좋아했는지 단초를 발견하고 잠시간 따스한 감정에 젖었다 한들.
세상살이는 여전히 퍽퍽하고 무언가 도모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만 보인다.
종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월급날 월급을 헤아리며 설거지를 하는 유나는 미래에 저당잡힌 현재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 와중 심심해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150살 시대' 소식.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익숙한 무기력함으로 애써 흘려버리려던 순간도 잠시.
미끄러져 드러누운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식칼을 통해 '죽음'을 마주한 박유나는 깨닫는다.
사람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결심한다.
'글을 써보기로.'
21:16~22:08, 그리고 지금은 23:05. 책 읽는 것보다 후기 쓰는 시간이 더 길다
3
이 책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린 시절의 꿈을 발굴하고, 그것으로 진정 행복한 삶, 나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탐색해나가는 현 시대의 청년 박유나의 사색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유나지만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 섥힌다.
유나의 남자친구 태민
이미 결혼하여 육아에 바쁜 친구들
삶의 관성에 매여버린 워킹맘 미경
요새 기타를 배우는 중인 유나의 어머니
각자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인생의 주요한 이벤트(혹은 화두. 결혼, 육아, 직업, 자아실현, 꿈, 사회적 시선 등등)....'숙제들'에 대한 다양한 선택과 경과, 그리고 결과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은 '인생의 숙제'이다.
바로 위에서 이미 언급했던 '취업', '결혼', '육아', '꿈'이라는 화두,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계획대로 취업하고 그저 원하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겠는가.
때 되니까 하는 취업, 나이가 차니 하는 결혼, 어른들이 원하니 갖는 아이.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없다는 점을 밝힌다)
이게 모두 인생의 '숙제'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적 압력으로 주어지고, 이것을 해내야만 한 명의 사회소속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취업을 못(안) 하거나, 결혼을 못(안)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사실, 거의 고려되지 않지 않나.
나 또한 최근에는 이 화두를 부여잡으며 끙끙대고 있다.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걸까? 결혼을 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걸까? 결혼을 하지 않은 삶은 불행한가? 나는 결혼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이고, 하지 않는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무엇이 가장 날 행복하게 하는 선택일까?
당연히 여기에는 그 외 여러 요소들이 결부되어 있다. 취업 여부, 기대 소득수준, 사랑은 할 수 있을지, 그런 사람을 만날 수는 있을지, 내 성격과 기질과 취향은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사회적 기대와 압력은 각기 선택지에 어떤 영향으로 드러날지........
이 책, <인생의 숙제>에서 박유나는 수 많은 고민과 내면의 관찰, 어쩌면 미래의 자신일지도 모를 사람들의 모습을 사유하면서 어떠한 결단에 다다른다. 그리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꽤나 하루하루가 찐하게 느껴진다는, 퍽 멋지고 유쾌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유나는 만족하는 듯 보였고,
나 역시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 책은 박원달이라는 작가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 원맨쇼의 결과물이다. 솔직히 내가 이 책을 서평 신청한 이유는 6할이 주제이고 4할이 그림체다.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동글동글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체. 매 페이지마다 4컷씩으로 구성된 장면장면의 연출은 꽤나 적절했고 중간중간 간지로 끼인 시 혹은 짧은 수필은 이전 에피소드가 주는 여운을 내 마음에 고이게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무척 만족스럽게 읽은 책.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 만화.
나와 같은 또래, 삶에 대한 고민과 번민으로 잠을 지새우는(사실 난 잘 잔다) 청춘들에게 의미있는 파문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지막은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실린 두쪽의 시.
겨울은 봄을 안고 있다
눈이 내린다
오억 개의 별처럼 반짝거리는
눈이 쌓인다
사하라 사막에 모래가 쌓이듯
눈길을 걷는다
어린 왕자와
마음이 어린 조종사가
우물을 찾아 밤길을 걷듯
눈을 맞는다
함께 눈을 맞는다
삶의 가장 큰 위로는
우산을 씌워주는 것보다
때로는
함께 눈을 맞는 것
우리의 볼에 떨어진
차가운 눈송이는
따뜻한 물방울이 되어
볼을 따라 흐른다
눈물이다
눈물은 왜 따뜻한가
삶은 왜 아름다운가
겨울은 봄을 안고 있다
pp.384-385
겨울은 봄을 안고 있다.
지금이 너무 춥고 외롭게 느껴진다면 우린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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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