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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ddong
- 작성일
- 2021.2.14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나비꽃 에디션)
- 글쓴이
- 박우란 저
유노라이프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은 복잡하다.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엄마를 물론 사랑하지만, 가끔은 엄마를 생각하면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엄마하고 대화를 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진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렇게 복잡할 것 없이 엄마가 그저 좋기만 했는데, 엄마에게 내 모든 걸 말해주고 싶었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나만 이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나처럼 엄마와의 관계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에 대한 감정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감정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왜냐면 엄마도 나를 복잡한 감정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그저 딸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으로 보기도 하며, 때로는 또래 친구와 같이 질투할 대상으로 보기도 한다.
"딸을 보는 엄마의 감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홀대 받으면서 자랐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딸에게 투영시켜 자신의 부모와 같은 방식으로 딸을 홀대하기도 하고 소외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딸아이에게서 발견할 때에는 불안해하고 불편해하면서 어떻게든 그 부분을 없애려 하지요. 또한 엄마가 결핍이 많으면, 지나치게 퍼붓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상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딸아이를 타인으로 대하지 않고, 어린 자신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죠. (p.20)"
이 문장이 엄마에 대한 감정이 점점 복잡해지게 된 이유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나는 엄마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결핍을 나에게까지 전이시키는 것이 미웠고, 엄마가 나는 자신과 다르기를 바란다면서 내 꿈을 주저앉히는 것이 짜증났다. 요약하자면, 엄마가 나를 딸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일부처럼 생각하는 게 부답스럽고 화가 났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감정이 갈수록 복잡해졌던 것 같다.
엄마의 결핍을 고스란히 물려받다
엄마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마흔이 다 될 때까지 엄마 얼굴 한 번 못 보고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있어서 엄마를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 엄마의 양육은 할머니가 담당하게 되었단다. 할머니는 무뚝뚝하고 약간은 차갑기도 한 분이었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래서 엄마는 어릴 적에 자기 감정을 어디에도 털어 놓을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고 내게 말했다. 오직 나에게만 한 이야기다. 우리집은 딸 둘에 아들 하나이지만, 엄마는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오직 나에게만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엄마에 대해 가장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나다. 나는 그 지위가 좋으면서도 불편했다.
어려서 감정을 털어 놓을 때가 없었던 엄마는 감정이 드문 사람으로 성장했다. 감정, 그게 엄마의 결핍이라면 결핍이었다. 엄마는 남들은 보면 눈물을 펑펑 흘린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다. 거의 울지 않는 엄마는 남이 우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싫어하기까지 한다. 문제는 내가 울음이 많은 편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울면 혼을 냈다. 울지 말고 똑바로 할 말을 하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허구한 날 운다고 생각해서 내 눈물을 지겨워했다. 나도 오기가 생겨서, 내가 우는 걸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하지 않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졌다. 나중에는 엄마에게 좋은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또 운다고 한 소리를 들을 까봐, 엄마에게 속상한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엄마처럼 내 속상함을 털어 놓을 곳이 없어졌다. 엄마의 결핍이 나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그리고 엄마는 그걸 혐오한다.
엄마는 자기가 이상주의에 한 때 빠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엄마는 자기 삶만 쾌적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큰 꿈을 가진 젊은이였다. 엄마는 개인의 영달보다는 전 세계의 풍요를 바랐고, 그걸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시민 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엄만 사회 운동을 하는데 뛰어 들었다.
엄마는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 때 사회 운동을 하는 대신에 선생님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말을 엄마는 종종 하고는 했다. 현실적인 기반 없이 이상을 달성할 수는 없는 것인데, 젊을 때에는 그걸 모르고 현실적인 기반을 다지는 데에 소홀했다고 고백헀다. 만약 지금 선생님이었다면, 월급도 충분히 나오고 연금도 많이 나올 테니 집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좀 더 뚜렷하게 낼 수 있었고, 아빠에게 뭔가를 더 강력하게 요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셨다.
엄마는 딸인 나는 자신과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이상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큰 꿈을 꾸는 것을 싫어했다. 엄마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고, 엄마만큼 나를 잘 알고, 엄마만큼 내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는 이유를 들며, 엄만 내 큰 꿈을 어떻게든 주저 앉히려고 했다.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꿈에 대한 자신이 없기도 하고, 이 꿈을 말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이 어떨까 싶어서 꿈을 마음 속에 꽁꽁 숨겨 왔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와서, 엄마에게 어렵게 내 꿈을 고백했다. 엄마는 단칼에 나는 그걸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우가 되기에 나는 얼굴이 너무 크고, 무다리이며, 매력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배우가 된다면 평생 가난하게 살 거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성실하고 착실하니, 공무원을 하면 잘 맞을 거라고 했다. 배우와 공무원, 그 두 가지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엄마가 나를 진짜 사랑해서 한다는 그 말이, 내 가슴 속에 아프게 박혔다. 그 말들은 평생 빠지지 않는 가시로 남았다.
배우라는 꿈이 쉽게 응원해줄 수 있는 꿈이라는 건 안다. 엄마의 말대로 내가 배우가 되었다면 나는 무명을 벗어나지 못해 평생 가난하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배우가 되겠다고 어렵게 고백했을 때, 엄마가 내 꿈을 주저 앉히기 위해서 했던 말들이 평소에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나인 것 같아서 너무 상처받았다. 엄마는 평소에도 나를 보면서 내가 얼굴이 크고, 무다리라는 것만 생각했을까. 엄마는 나에게 맞는 최적의 직업이 공무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엄마에게 나는 그 정도의 가능성밖에 없는 자식일까.
그 뒤로, 나는 배우가 되는 걸 완전히 포기했다. 그게 전적으로 엄마의 뼈아픈 조언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변에서 아무리 좋지 않은 말을 해도, 그 꿈에 대한 자신이 있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배우가 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그 말이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면서 해줬던 말들이 너무 버거웠고, 엄마의 사랑도 버거워졌다.
엄마가 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어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몰라주었던 마음을 누가 마침내 알아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엄마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다 읽은 책을 엄마 침대 옆 협탁에 내려 놓았다. 자기 전에 책을 읽는 엄마가, 이 책을 발견하고 무심코 읽어야 겠다는 마음을 먹어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엄마가 나를 자기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한 명의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면서.
엄마는 종종 내가 많이 변한 것 같아서 서운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엄마한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해주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면서 서운헀단다. 지금은 열 번 물어야 한 번 간신히 대답을 듣는다면서, 뭐 때문에 내가 갑자기 이렇게 무뚝뚝한 딸이 되었는지 엄마는 궁금해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에게 상처 받았다. 하지만 엄마에게 상처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또 상처받을까봐 엄마에게 엄마가 남긴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나는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더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상처 받을 일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게 엄마의 서운함이 되었다.
이 책이 내가 엄마에게 차마 상처가 될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대신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몰래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둔 이 책을 하루에 한 번씩 확인하고는 한다. 1장이 끝나는 부분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엄마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가감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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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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