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쟁이
  1. 내 맘 속의 무지개

이미지

도서명 표기
메트로폴리스
글쓴이
벤 윌슨 저
매일경제신문사
평균
별점8.8 (116)
분홍쟁이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에 살았던 수메르인이 남긴 작품 <길가메시 서사시>. 여기에 등장하는 엔키두는 원시적 자연 상태의 인간을 대변한다. 그는 황야의 자유로움과 도시의 부자연스러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가 사랑한 샤마트는 세련된 도시 문화의 화신이다. 고대 서사시에서조차 앞으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맞닥뜨려야 하는 선택의 순간을 예고하는 듯 하다. 문명인가, 자연인가.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았으며,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우루크에서부터 시작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로마, 뤼벡, 리스본, 런던, 맨체스터와 시카고, 파리, 뉴욕, 바르샤바 등을 거쳐 라고스까지 이르는 거대한 여정에서 짐작할 수 있다. 도시별로 바라보는 인류의 흥망성쇠.



 



기원전 3,000년 경 전성기를 누리던 우르크는 '도시'의 대명사다. 세계 최초의 도시였고, 1,0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심으로 군림했다. 기후 변화를 거쳐 기존의 생존방식이 통하지 않자 습지대의 농부들은 우루크로 몰려들었고,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건축이나 공학과 관련한 오랜 전통을 지속시켜온 인구집단은 기후변화를 극복, 농업혁명을 이끌어냈고, 우루크의 격렬한 역동성과 고속성장은 우루크가 교역의 발상지 역할을 맡은 데서 비롯되었다. 도시에서는 농촌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직업이 생겼고, 문자와 화폐체계가 생겨났으며, 갖가지 발명품이 등장한다. 막강했던 우루크는 또다시 다가오는 기후변화와 야만인들의 습격으로 쇠퇴해갔고, 결국 폐허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등장하는 이상적 대도시. 타락한 도덕성과 성적 욕망을 부추긴 도시 바빌론의 등장.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며, 인간들과 한데 어울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대의 사람들은 깨닫고 있었을까.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가 거둔 놀라운 성공은 대부분 외부적 영향에 대한 개방성 그리고 자유민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외국 태생이라는 점 덕분이었다. 그리스의 도시 문명, 특히 아테네인들이 그토록 진취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은 뱃사람에 의한 도시화 때문이었다. 그리스 사회의 핵심은 폴리스였다. 폴리스는 도시 환경 속에서 조직된 자유(남성) 시민들의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경제적 공동체였다. 그리스인들의 관점에서 도시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였고,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었다. 그리스인의 정체성에는 도시 생활을 둘러싼 강한 흥미, 권위에 속박된 삶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개인적 독립을 중시하는 경향이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들은 폴리스를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하며 스스로를 야만인보다 더 자유롭고 인간다운 존재로 인식했고,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으며, 도시 거주라는 생활방식도 공유했다.



 



아테네의 불규칙적인 외곽선과 개방적인 문화는 길거리에서 토론과 논쟁이 가능하게 했다. 반면 거리가 합리적이고 직선적으로 설계된 알렉산드리아는 엄격하게 관리된 곳으로, 관념이나 사상이 도시 생활과 유리된 채 제도 속에 갇혀 있던 곳이었다. 아테네는 자발적이고 실험적, 알렉산드리아는 백과사전적이고 순응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아테네는 철학과 정치학, 연극 분야에서, 알렉산드리아는 과학, 수학, 기하학, 역학, 의학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문명 충돌이 허용되고 장려되었던 알렉산드리아. 후에 이곳의 이국적 분위기는 로마를 불러들인다.



 



목욕탕을 통해 바라본 로마의 쾌락적인 문화사를 지나, 다채로운 식도락의 향연을 보여준 바그다드를 거쳐, 자유도시의 모범사례인 뤼벡을 만난다. 뤼벡은 효율적이고, 번창하고, 무장을 갖춘 소규모 자치적 독립체제인 '자유 도시'의 가장 훌륭한 사례다. 자유 도시는 유럽이 세계의 지배적 위치에 오르는 데 필요한 토대가 되었다. 뤼벡은 나무와 흙으로 지은 하나의 성채였다. 화재로 불에탔던 예전의 '읍'은 2년 뒤 하인리히 사자공에 의해 재건되었다. 성전과 도시 건설은 동시에 진행되었다. 서쪽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은 새로 건설된 도시들을 정복과 개종, 식민지 개척 활동을 펼치기 위한 교두보로 삼았고, 하인리히 사자공은 그런 이들에게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했다. 지도자들은 독자적 입법권과 자치권을 확보했고, 사절단을 파견해 상인들에게 통행세 없이 뤼벡에 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후 한자동맹으로 인해 무역이 발달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곧장 동아시아로 갈 수 있는 항로가 개척됨에 따라 유럽인들에게 방대한 시장이 새로 열렸고, 암스테르담이라는 신흥 도시의 등장으로 귀벡의 무역 패권이 무너졌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도시는 역시 파리다. 내가 파리에 갔어도 역시 '파리 증후군'에 시달렸을까.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도시인 파리를 동경했지만, 냉담한 현지인들과 붐비는 대로, 불결한 지하철역과 무례한 웨이터들 때문에 겪는 '정신적 붕괴', 파리 증후군. 예리한 품평가, 도시의 인파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동떨어진 채 도시를 탐색하는 은밀하고 초연한 관찰자인 '플라뇌르'.어떤 도시에 존재하든 '플라뇌르'는 내가 그리는 이상향이자, 도시를 걸어다니는 것은 그 도시를 더 잘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될 것이다.



 



가장 마음 아팠고 가장 감동받은 도시는 '바르샤바'다. 바르샤바에서 자행되었던 그 모든 잔혹한 행동들. 중요한 것은 그런 총체적 파괴의 현장에서도 삶의 자취는 남아 있었다는 것. 사람들이 돌아오자 도시는 다시 살아난다. 안타까운 것은 유럽 도시들의 모습이 전쟁과 전후의 이상주의 물결에 의해 전혀 딴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용케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건물들이 불도저에 밀려 사라진다.



 



교외로 평창하는 도시의 역사 로스앤젤레스, 마천루가 드리워진 뉴욕, 역동성으로 꿈틀대는 미래도시 라고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미래도시'의 이미지는 '미래'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기 쉬운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저자는 라고스, 뭄바이, 마닐라, 다카, 리우 같은 도시들의 빈민가를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간 생태계로 꼽았다. 생존은 인간 생태계에 달려있다면서. 라고스의 피상적 혼돈 상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와 창의성이 분출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저자는 인간의 생명력과 적응력, 그리고 도시와의 화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어떤 환경이 닥치든 인류는 해결책을 찾아내 그 환경에 적응하며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 결코 쉬운 독서는 아니었지만, 이제 도시를 더 이상 인간이 살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그 무언가로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도시를 중심으로 바라본 인류의 역사. 마치 긴 꿈을 꾼 듯, 아주 오랜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분홍쟁이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1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0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8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