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쟁이
  1. 내 맘 속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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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글쓴이
서민아 저
어바웃어북
평균
별점9.2 (38)
분홍쟁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를 무척이나 고생스럽게 했던 과목이 있다. 바로 수학과 물리!!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고 외워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시험 당일날 아침까지 끙끙대게 만들었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 과목들을 만든 사람들을 저주(?)라도 하고 싶게 만든 공포의 과목들이었다. 오죽했으면 괜히 애꿎은 물리 선생님을 원망했을까. 결국 '찍자!!'라는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었던 시험. 대학에 진학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 중 하나가 더 이상 수학과 물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명화 분야에서 만난 물리학이라니!!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거부감으로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무척 걱정스러웠는데 오잉??!!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등장했지만 전체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 [미술관에 간 화학자 : 두 번째 이야기] 도 함께 읽고 있었는데,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으면서 느낀 것은 화학과 물리학에서도 독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 책들을 읽으면서 명암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나는 명암법 하면 이제 카라바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15세기 초에 이탈리아의 화가 마사초가 자신의 작품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에서 선보였던 명암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으로 진일보시켰고,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이라는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테네브리즘은 이탈리아어로 어둠을 뜻하는 'tenebra'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둠을 밝히는 빛을 연구, 분석한 결과를 회화에 적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사물에만 빛을 비춰 강조하고 그 밖의 부분은 어둡게 그리는 것으로, 밝고 어두움을 통해 그림 속 인물의 심리 상태까지 나타내기도 한다. 카라바조의 수많은 그림들 중 이번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었다.





 


내기 운동경기 끝에 살인을 저지른 카라바조는 체포되었다가 3일만에 탈옥했고, 죽기 전까지 4년 동안 도망자 신세로 지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주옥같은 그림을 그린 카라바조. 목이 잘린 골리앗은 죽기 직전 카라바조의 자화상이고, 다윗은 젊은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저자는 카라바조를 향해 묻는다. '당신에게 미술은 무엇'이냐고. 나도 그에게 묻고 싶다. 도망다니면서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인가, 삶을 향한 미련인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에 대한 애증인가.



 



<미술관에 간 지식인> 시리즈를 읽으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마르크 샤갈'이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름이야 들어 알고 있었지만,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통해서였을 뿐이고, 심지어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 이름으로나 익숙한 정도였다. 그런데 책에서 소개된 그림들을 보니 취향저격. 특히 벨라와의 사랑을 그린 작품들은 정말 인상적이다.





 


<생일날>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 얼마 전인 7월 7일 샤갈의 생일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생일에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벨라에게 감동한 샤갈의 마음이, 하늘에 둥실 떠올라 곡예를 하듯 얼굴을 돌려 여인에게 키스하는 남자로 그려져 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놀란 얼굴의 벨라. 피어나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은 붉은 바닥으로 대변되고, 방안을 가득 채운 붉은 열기도 사랑의 절정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서 잠시 과학 이야기를 하자면, 샤갈이 그림에서 즐겨 쓰던 색은 빛의 삼원색이라고 알고 있는 빨강, 파랑, 초록과 색의 삼원색인 사이안, 마젠타, 노랑이다.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을 섞으면 생성되는 이차색이 색의 삼원색이 된다. 즉 파랑+초록은 청록색(사이안), 빨강+파랑은 자홍색(마젠타), 빨강+초록은 노란색(노랑)이 된다. 샤갈이 그림에서 자주 사용한 세 가지 색은 빛을 인지하는 시각, 즉 망막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색들이다. 망막에는 원추세포와 간상세포라는 두 가지의 시세포가 있는데, 원추세포는 망막의 중앙부에 많이 분포하고 색을 식별한다. 어두울 때는 간상세포가 주로 활동하고 밝을 때는 원추세포가 주로 활동한다고 한다.



 



여러 책들의 표지에서 많이 보았던 그림, 바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집시 여인이 만돌린을 연주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 옆으로 사자 한 마리가 다가오지만, 어쩐 일인지 이 사나운 동물이 그냥 지나쳐 간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따스함. 달빛이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안는 듯한 느낌이다. 앙리 루소의 모든 그림은 각각 하나의 '꿈'을 그리고 있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은 꿈이라는 잠재의식으로 표출되고 형상화된다. 정글 수풀과 야생 동물, 사람을 주로 그렸던 루소의 그림은 모두 그의 꿈 이야기다. 그의 마지막 꿈은 1910년 작품 <꿈>. 그의 그림 안에서, 늘 등장인물들과 감상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저 달, 달이 참 마음에 든다.



 



언급한 그림들 외에도 나노입자, 퀸텀닷, 메타물질, 불확정성의 원리 등 물리학으로 풀어낸 명화 이야기가 가득하다. 과학자의 시선으로는 경이로운 현상들을 쉽게 풀이해주고, 휴일이면 붓을 든다는 화가의 시선으로는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 그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리학에 대한 거부감까지 줄어들게 만들어 준 책. 평생 간직하고픈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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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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