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步
  1. 자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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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글쓴이
멀린 셸드레이크 저
아날로그(글담)
평균
별점9.8 (26)
初步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생명체 중 가장 헷갈리는 것을 꼽으라면 곰팡이가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음식을 부패시키고 썩어가는 물체가 있으면 그곳엔 어김없이 곰팡이가 피어오른다. 그런가 하면 우리들의 먹거리 중에서 곰팡이의 자실체인 버섯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고, 효모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원료이기도 하다. 이런 곰팡이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외로 아는 것이 없다. 또한 곰팡이는 우리의 몸 안이나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잘 알아보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습기 많은 곳에 번진 얼룩을 보고서야 그것이 곰팡이인줄 알 뿐이다.



 



그러나 곰팡이는 지금의 우리를 있게 만든 주인공이다. 지금은 당연히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곰팡이에 대한 내용을 되살리면 아마, ‘식물은 곰팡이를 통해 토양으로부터 인, 질소 등의 영양분을 흡수하고, 곰팡이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 낸 에너지원을 그 대가로 받는 공생관계이다’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배우고 잊어버린 곰팡이가 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고 지금도 땅 위의 생명들이 지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 우선은 놀라움이 앞설 것이다. 파나마 열대우림에서 지하 균류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균학자, 멀린 셸드레이크가 쓴 이 책은 우리에게 그런 곰팡이의 세계를 알려준다. ‘곰팡이는 돌을 먹고, 흙을 만들며, 오염물질을 소화시키고, 식물에 양분을 주거나 죽게 만들고, 우주에서도 살아남으며, 환각을 보게 만들고, 식량을 생산하고, 약물을 만들어내고, 동물의 행동을 조종하며, 지구 대기의 성분에 영향을 미친다. 곰팡이는 우리가 깃들어 사는 이 행성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다.’(23쪽)라고 말하는 그는, 가장 작은 미생물이지만 땅 아래에서 식물과 식물을 연결시켜주는 네트워크로써의 곰팡이, 즉 균사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곰팡이의 균사는 균사체 네트워크로서 존재한다.



 



곰팡이의 균사와 식물의 뿌리는 흙속에서 서로에게 득이 되는 짝을 찾는다고 한다. 나무뿌리는 곰팡이가 포자를 퍼뜨리고 균사의 가지를 더 빨리 더 왕성하게 자라게 해주고, 곰팡이는 나무뿌리를 조종하는 식물성장 호르몬을 분비해 나무의 잔뿌리가 많이 뻗어나도록 만드는데, 이러한 만남에 휘발성 화학물질을 이용한다. 이렇게 해서 곰팡이와 나무는 서로의 뿌리구조를 변화시키고 각자의 신진대사 과정과 성장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성한다. 나무는 나무대로, 곰팡이는 곰팡이대로 자신과 맞는 많은 짝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흙 속 지하세계는 이들로 얽히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균사가 균사체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곰팡이의 균사가 균사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와 융합이 필요하다. 균사가 가지를 치지 못하면 하나의 균사가 여러 개로 갈라지지 못하고, 다른 균사와 융합하지 못하면 복잡한 네트워크로 확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융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균사를 찾아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끌어당겨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균사체 네트워크는 화학적으로 예민한 하나의 커다란 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표면 어디서든 분자 하나만 수용체와 결합해도 신호를 폭포수처럼 흘려보내 곰팡이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균사체의 개념은 모호하다고 한다.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상호 연관된 하나의 존재이지만 균사정단의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복수의 개체가 된다. 곰팡이는 이런 균사체를 통해 먹이를 섭취한다. 균사정단은 동시에 모든 경로로 먹이를 찾아나서는 것이 가능하고, 그러다 먹이를 발견하면 그와 연결된 네트워크 부분을 강화하고 소득이 없는 부분은 정리한다. 한쪽의 네트워크는 거둬들이고 다른 쪽의 생장을 거듭함으로써 균사체 네트워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곰팡이는 균사체를 통해 빛, 온도, 습도, 영양분, 독성물질, 전기장 등 환경을 적극적으로 지각하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바로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유기체들과 수없이 많은 화학적 소통 채널을 유지하게 된다. 이런 균사를 두고 저자는 융합하거나 번식할 때면 타자로부터 자아를 구분하며, 타자의 종류도 구분한다고 말한다. 공생관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각 파트너가 상대방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해주어야 하지만 생태적인 조합에 파트너의 정체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식물의 진화이다. 6억 년 전쯤 녹조류가 물에서 뭍으로 올라올 때 녹조류의 뿌리역할을 해줌으로써, 녹조류가 뭍에 안착하게 해준 것이 바로 곰팡이였다. 그로부터 식물의 진화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균근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최초의 식물은 뿌리도 없고 특별한 구조도 갖추지 못한 초록색 조직 덩어리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초록색 덩어리가 응축되어 기관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조직이 곰팡이 동지를 수용했으며, 곰팡이는 흙속에서 영양분과 물을 끌어다 주었다. 진화의 결과 첫 뿌리가 나타났을 즈음, 균근은 조류와 곰팡이가 지상으로 올라온 후에 생겨난 모든 생명의 뿌리를 이루었다.’(220쪽)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식물은 땅 속의 균근곰팡이의 무리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 어떤 곰팡이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장과 목질, 엽육, 과육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곰팡이와 뿌리 사이에 오가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시적 상호작용은 식물의 형태, 생장, 맛 그리고 냄새로 나타난다.



 



이러한 균근네트워크가 가지는 가장 독특한 특징은 바로 식물과 식물이 서로 물질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로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즉,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식물에서 자원이 부족한 식물로 물질이 이동하는데 균근곰팡이의 균사체가 관여한다. 저자는 물질이 곰팡이 네트워크를 통해 위에서 아래로, 영양원에서 흡수원으로 흐르는 경향은 분명하지만 그 운반이 수동적인 확산의 형태로만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한다. 수동적인 확산은 속도가 너무 느린데 반해, 균사 내부의 세포 흐름은 빠른 속도의 운반을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이 영양원과 흡수원 사이의 역학에 의해 제어되지만, 곰팡이는 길이 자람, 부피 자람, 네트워크 가지치기 또는 다른 네트워크와의 융합을 통해 그 흐름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균근 네트워크는 서로 호혜적인 네트워크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네트워크는 양분의 이동통로도 되지만 독성물질이나 식물의 생장과 발달을 제어하는 호르몬, 박테리아는 물론 유전물질도 이동하는 통로도 된다. 균근 학자들은 이를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이라 빗대어 부르기도 한다. 곰팡이의 네트워크 안에서 이처럼 복잡한 행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곰팡이의 균사체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도 곰팡이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다. 알코올제조에 사용하는 효모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균류정화를 통해 오염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균류직조기술로 균사체를 이용하여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곰팡이는 인슐린에서부터 백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약물을 생산하는데 쓰이는 생물공학적 도구가 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에서 보듯 아주 작은 미생물이 우리 인간사회를 통째로 멈추게 만들지만 우리는 아직 어떠한 통제권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곰팡이의 의학적 잠재력 중 하나가 바로 항바이러스제로서의 역할임을 생각할 때, 지금의 팬데믹을 벗어나게 해줄 계기는 곰팡이로부터 나올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처럼 곰팡이를 이용하는 기술들을 소개하면서, 그럼에도 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곰팡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버섯이나 효모 등은 곰팡이가 아닌 버섯이나 효모로써 생각하고 대한다. 그만큼 우리는 곰팡이에 대해 무지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식물학, 미생물학, 생태학 등의 지식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세계를 들려준다. ‘곰팡이가 세상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분해하기도 한다. 곰팡이의 행동을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 우리는 곰팡이를 보거나 접촉한다. (……, 그럼에도) 곰팡이는 우리의 행동을 포착한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면,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다.’(378쪽) 그런 곰팡이를 알아가면서 새삼 우리는 자연의 법칙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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