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단으로 글쓰기

더오드
- 작성일
- 2021.5.18
마지막 고래잡이
- 글쓴이
- 더그 복 클락 저
소소의책
<거의 모든 라말레라 사람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조상님들의 선물을 갈망하며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수평선만 바라본다. 그러다가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가 보일 때, 숫돌로 간 작살촉이 섬광을 뿜을 때, 조상님들이 작살잡이들의 편에 설 때, 매 순간 생과 사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낄 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라말레라 사람들에게 사냥은 늘 새롭다. p421>
고래잡이가 불법이라는 상식을 가진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다.
예외적으로 라말레라에서 향유고래를 잡는 행위는 합법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유는 (라말레라가 속해 있는 인도네시아 법령집에 기반해) 토착 부족에게 전통적인 생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포경규제협약에서도 동일하게 간주하는 부분이다. (토착 부족의 지속 가능한 생계형 사냥을 허용하고 있다.)
라말레라 부족이 취하고 있는 수렵채집 시대의 생활 방식과 현대적 생활 방식의 이점을 둘러싼 논쟁은 종종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한지를 결정짓는 방향으로 흐른다. p417
모든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선언하길 좋아하지만, 지구촌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 현대적인 문화가 되었든 전통적인 문화가 되었든- 중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 p417
국제자연보호협회, 돌핀 프로젝트와 같은 환경보호단체들이 인도네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으며 이들의 부족의 삶의 기반인 고래잡이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읽으며 과연 진정한 선(善)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모든 발전이 이로운 건 아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진보란 뭔가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와 관련된 변화 중에서 50퍼센트 이상은 상실이다. p416
사실상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선진국의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는 현실이다. 소수민족, 오래전부터 그 땅을 지켜온 토착 부족들의 생활 방식과 삶은 우리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세계화가 지향하는 방향에 더 가깝다고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더그 복 클락은 큰 파고에 묻혀버리고 사라져가는 부족민들의 목소리를 3년에 걸쳐 듣고 기록했다. 그리고 44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논픽션물로 만들어 우리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1부 1994~2014년
2부 2015년
3부 2016년으로 나눠 기록한 이 장대한 서사물에는 단순히 몇 천 명의 부족민이 망망대해에서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방법으로 고래를 잡아 삶을 이어간다라고 한 줄로 요약되기 마련인, 그들의 삶의 숨결을 생생히 담아냈다.
<이그나티우스는 문득 끔찍한 가능성이 생각났다. 그 내용인즉, ‘고래가 방금 선단을 유인하기 위해 죽은 시늉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고래가 분수공으로 내뿜은 물줄기에 피가 섞여 있지 않았다는 것은 수십 번의 작살질이 고래의 급소를 관통하지 못했음을 뜻했다. 그렇다면 고래가 입은 상처는 피상적이었을 것이다. p45>
이 책의 백미는 라말레라 부족이 향유 고래 사냥을 나간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인데, 고래를 잡으려는 부족민과 고래간의 기싸움, 눈치싸움, 서로를 속고 속이려는 치밀한 순간들이 디테일하게 전해진다. 두 존재 모두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였고, 누구하나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이었다.
<작살끈에서 해방된 고래는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등지느러미의 그림자와 함께. 잠시 후 고래는 물줄기를 뿜어내고 지느러미를 빳빳이 세운 후 ? 선원들을 위협하는 것인지,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잠수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수면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p47>
결국 이 대결은 고래가 이겼다. 선체는 망가지고, 망가진 선체에 의지한 라말레라 사람들은 태풍을 맞이해야했다. ‘발레오’ 라고 외치는 소리에 시작되는 고래잡이는 매번 목숨을 건 사투와 다름 없었다.
<시프리는 ‘거의 1만 4,000년 동안 가속화된 문화 소멸의 끄트머리에서 라말레라 부족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떠올렸다. 모든 인류가 소규모의 수렵채집 무리 속에서 생활했던 기원전 12세기에, 전 세계에 약 10만 개의 언어가 존재하면서 나름의 문화를 대변했다. p131>
라말레라 부족을 제외한 많은 천연자원을 갖고 있던 신대륙들, 인디언들의 땅, 애보리진의 땅은 항해술과 신식무기를 앞세운 유럽인들에 의해 점령당해갔다.
<그러나 라말레라 부족은 렘바타의 외진 곳에 있는데다 이렇다 할 자원이 없어서 최악의 만행을 면했다. p133>
물론 라말레라에도 이방인들의 발길이 닿았지만, 이방인들과 타협하지 않고 맞서는 그들을 본 유럽인들은 그들에 대해 한 줄로 기록을 남겼다. 고래를 잡으며 살아가는 야만인.
<인류학자들이 라말레라 사회를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사회 중 하나이며, 미국이나 유럽을 훨씬 능가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바로 베파나 때문이다. p176>
최초로 라말레라와 접촉했던 이방인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인이 묘사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평가가 이들 부족을 정의한다. 여기서 베파나란, 선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라말레라 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개인의 행운을 부족과 공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고래 사냥의 불확실성을 만회하기 위해 베파나가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베파나는 ‘잉여량 재분배’라는 실용적 목적에 부합한다. ‘선물 주기’는 단순한 미덕을 넘어 재분배의 수단이며, 궁극적으로 호혜적이기 때문이다. (중략) 수렵채집사회가 산업사회보다 평등적이고 관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177, 178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한 마디로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현대인은 조상보다 궁색한 삶을 살고 있다. p178
라말레라에서 테나에 승선해 항해하고, 사냥감이 의례적으로 공유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의례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내가 뭔가 중요하지만 위기에 처한 것을 경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p433) 라는 문장에서 저자가 3년을 걸쳐 일곱 번의 방문으로 얻고자 한 것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한 학자의 추정에 따르면 ‘2100년이 되면 현존하는 언어 중 무려 90퍼센트가 사라지고 겨우 700개의 언어만 살아남을 것이며, 전 세계 인구는 주로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의사소통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학자의 말대로라면, 매달 두 개의 언어와 그에 수반되는 문화- 원주민의 특징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수천 년에 걸친 역사, 철학, 생활 방식, 종교, 전통 ? 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중략) 현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은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는 동식물의 대량멸종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p135>
이른 봄에 읽었던 <리볼트, 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 (나다브 이얄, 까치, 2021)가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끊임없이 미래를 걱정하고 있으며, 자연이나 조상님들과의 관계가 약화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자신과 가족이 배불리 먹는 것으로 족했던 ‘단순한 삶’이 이제는 세금도 내고 모터보트도 구입해야 하는 등 ‘복잡한 삶’으로 바뀌었다. (p386)
- 한 줄 요약
수 세기 동안 대나무 작살로 고래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온 라말레라 부족의 일상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그들의 증언과 생각을 꼼꼼하게 채록하면서 3년에 걸쳐 밀착 취재한 이 책은 원주민의 전통과 현대 문명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빚어내는 변화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면서 공감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역작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