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체험기
짱가
- 작성일
- 2022.1.14
슬픔의 위안
- 글쓴이
-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공저/김설인 역
현암사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의 충격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 너무 많은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이기에 그들의 가족과 이웃뿐 아니라 대다수의 시민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다. 진도 팽목항까지 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안산의 분향소에서 추모하는 이들도 많았다. 저마다 자신의 방법으로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했다.
당시 내가 즐겨듣는 팟캐스트가 여럿 있었는데, 1~2주에 한 번씩 방송을 업데이트했다. 과학 상식을 다루거나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러운 세월호 사고 비보에 진행자들도 방송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추모에 참여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슬픔을 말하면서 그들 자신과 청취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때 한 과학방송에서는 '별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광대한 시공간의 우주 속에서 작고 나약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인간은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고, 그 별도 언젠가는 우주 저 너머로 사라져 간다. 우리 개인의 삶은 유한하지만 나는 더 크고 지속되는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삶이 허무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는다.
책을 소개하는 방송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진행한 <문학 이야기>였다. 원래 다루려던 내용을 내려놓고 그는'슬픔'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것으로 한 시간 반을 채웠다. 타인의 슬픔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이해해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슬픔은 공부해서라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공부에 필요한 내용이 이 책에 담겨있다.
신형철이 그때 방송에서 했던 말 중 일부를 대략 옮겨본다.
슬픔 앞에서 무감각하고 무례했던, 그래서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분들이 있다. 라면을 먹고, 기념사진을 찍고, 종북을 운운했던 분들, 그리고 상황을 지휘하고 이끌었어야 했던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이런 것들은.. 슬픔에 대한 무감각은 그 자체가 폭력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밖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매우 폭력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흉기로 사람을 찌르는 것만큼이나 슬픔의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 될만한 일이다. 당신들이 슬픔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말은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어서 나 자신과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슬픔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 노력할 수 있는 잠재력 정도는 우리에게 있다라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티브이에서 몇몇 언론인들이 방송을 진행하면서 목이 메어 침묵을 지키고 눈물을 흘리고 했던 그 장면을 보면서 그 모습 자체가 우리에게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인간이라는 게 이런 존재지... 세월호와 진도 vts 사이의 교신은 엉망이었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의 교신은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구나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니었나. 도무지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슬픔의 교신이 이토록 어렵구나라는 절망감을 느꼈다가 그 순간에 교신이 성공하는,, 완전한 성공은 아니겠지만, 모습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죠.
설명을 안 해주면 모를 때는 설명을 해줘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완벽히 100% 이해하고 완전히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들일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면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왜 이 중요한 것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그분들,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는 다르지는 않을지도 모를 우리 자신이 슬픔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하기 위해서 도움이 될만한 그런 글들을 한번 읽어드려보면 어떨까.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중의 하나 아닐까.
지금까지도 그때의 방송을 가끔 듣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위로할 수 없다고 신형철이 말했다. 따뜻한 인간애와 진실한 성의만으로는 위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감정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종종 타인의 감정을 읽는 데 실패한다. 어색하고, 난처해진다. 하지만, 방송의 이야기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이해에 가까이 가려는 마음이었다. 마음을 느끼게 되면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위로에 가닿는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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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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