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들

책읽는엄마곰
- 작성일
- 2022.5.7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 글쓴이
- 신채윤 저
한겨레출판
아픔과 관련한 이야기는 신기한 힘이 있다. 같은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와의 관계가 절대로 이전과 같지 않음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저 사람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결이 달라진다. (p.45)
'내가 나인 것을 잊지 않고 사는 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았을 이 프롤로그를 펼쳐두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녀에게서 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으나, 아프고 난 뒤에 진짜 '나'를 볼 수 있음을 경험한 나이기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은 아닐까 넘기기 겁이 났다.
사실 군데군데 좀 울었다. 그녀가 담담히 이야기하는 아픔을 알 것 같아서, 또 모를 것 같기도 해서. 너무 어린 나이에 하루를, 사람을, 마음을 또 주변을 정리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서 속이 상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기특하다는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아프고 나면 자란다는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삶을 깊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어쩌면 누구보다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울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우는 것과 속상해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나. 만약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내가 쓸데없이 흘려온 눈물들이 참 아쉽다.
‘병에 걸렸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병이 망칠 수 없는 내 일상의 웃음이 있음을 알아두고 싶은 것이다. (p.136)
그녀의 이 마음에 온 마음을 담아 손뼉을 치고 싶었다. 물론 병에 걸린 사람의 일상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삶과 결이 다르다. 고려해야 할 것도, 확인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일상까지 빼앗길 수 없음을 잊고 살았다. 내가 많이 아팠을 때 그저 잘 걸어 다니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을, 상태가 호전된 지금 잊었던 거다. 그녀의 문장들을 읽으며 나의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깨닫는다. 나의 하루가 얼마나 빛나고 귀한지 또 깨닫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매일같이 잊어도 매일 일깨우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너 힘 좀 빼고 살아, 그렇게 호전적으로 살지 않아도 돼, 매일 하루를 대할 때 투지를 다지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p.69)
내가 휴직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래,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잖아. 쉬어도 돼”라고 한 사람이 반. “복직할 거지? 아깝잖아.”라고 말한 사람이 반이었다. 지금? 나의 복직이 아까웠던 이들은 '남'이 되어있다. 쉬어도 된다던 이들은 여전히 지금 나의 모습이 보기 좋다며 나의 곁에 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아까웠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의 복직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힘 좀 빼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매일매일 전투하듯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저 오늘의 나로 살아가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오늘 하루, 가득히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려 한다. 나 힘 좀 빼도 괜찮아!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