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우리말 칼럼

우달이
- 공개여부
- 작성일
- 2009.10.2
내일이 추석이네요. 내일 아참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시는 분들은 이미 장을 다 보고, 전을 부치고 밤을 깎는 등 한창 음식을 만들고 있겠네요. 저도 조금 전에 송편을 빚고 밤도 까고 그랬습니다.
저도 그렇고, 이미 장을 보신 분들은 ‘볼 장 다 본’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볼짱 다 봤다’ 따위로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금리를 제로까지 낮추고 채권도 무한대로 찍어댔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돈도 없다니 볼짱 다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아시아경제 2009년 7월 8일)
“세상에 강에서 적조가 발생하고 감성돔이 잡힌다면, 볼짱 다 본 것 아니겠소?”(한국일보 2008년 12월 3일)
“영어소동으로 새정부 볼짱 다 본 것 같다.”(네이버 블로그)
따위처럼요.
그러나 “일이 더 손댈 것도 없이 틀어지다”를 뜻하는 표현은 ‘볼 장 다 보다’입니다. 이 말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하다”나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다”를 뜻하는 비유적으로 일컫는 ‘볼 장 보다’를 강조하면서 반어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장을 다 봤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처럼,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죠.
그러나 의미가 본래의 뜻과 상당히 멀어져 있지만, ‘볼장’이 하나의 말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볼 장 다 보다’처럼 각각의 말들을 띄어 써야 합니다.
또 시장과 관련한 말 중에 ‘도깨비시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간, 기말 시험 때만 되면 마치 도깨비시장처럼 시끄러워 요즘 같아선 도저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요.”
“밤새 도착한 산님들의 식사준비 등으로 대피소 안은 아수라장이고 숙소 또한 산님들로 만원이라 마치 도깨비시장 같은 느낌이다.”
따위 문장에서 보이는 ‘도깨비시장’ 말입니다.
이 말은 대개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모습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많이 쓰입니다. 저도 이 말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요.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어느 책에도 그렇고, 적지 않은 블로그 글에도 “‘도깨비시장’은 ‘도떼기시장’을 잘못 쓴 것”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맞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세월 모르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본래 이 말은 ‘도떼기시장’이 맞습니다. ‘도떼기’는 “따로따로 나누어서 하지 않고 한데 합쳐 몰아치는 일”을 의미하는 ‘도거리’의 ‘도’에 “장사를 하려고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다”를 뜻하는 ‘떼다’가 더해져서 생겨난 말입니다. 즉 소매(小賣)를 ‘낱떼기’라고 하면, 도매(都賣)가 ‘도떼기’인 것이죠.
그런데 이 ‘도떼기시장’을 “정신이 없을 정도로 요란하고 시끄러우며, 별의별 것이 다 있다”는 의미에서 ‘도깨비시장’으로 쓰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설 속에 나오는 도깨비들이 좀 소란스럽고 뭐든 만들어 낸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쓰는 것이겠지요.
‘도떼기’의 어원을 생각하기 어려워 우리 귀에 익숙한 ‘도깨비’로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도떼기시장’이 바른말이지만, 이를 ‘도깨비시장’으로 쓰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은 ‘도깨비시장’도 ‘도떼기시장’과 함께 표준어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뭐를 써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때기시장’이나 ‘돗떼기시장’ 등은 바른 표기가 아닙니다.
이를 모르고 아직도 ‘도깨비시장’은 ‘도떼기시장’을 잘못 쓴 말이라고 해 놓은 블로그 글들은 빨리 고쳐져야 합니다.
참, 제가 저 앞에서 “물건을 생산자나 도매상에게서 사들여 직접 소비자에게 팖”을 뜻하는 말로 ‘소매’를 썼는데요. ‘소매’는 일본식 한자말로 국립국어원은 ‘산매(散賣)’로 순화해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그렇게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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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