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

ena
- 작성일
- 2022.11.27
후쿠시마
- 글쓴이
- 앤드류 레더바로우 저
브레인스토어(BRAINstore)
2011년 3월의 동일본대지진은 충격이었다. 인류가 쌓아놓은 문명이 덮쳐오는 쓰나미에 인형처럼 쓸려가 버렸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실종되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뉴스는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급박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정확한 상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보도하는 이들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꺼지지 않고 있으며, 원자로의 노심이 녹고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멀리서 원전의 원자로를 보여주면서 위급함을 전하는 목소리는 분명 위급했지만, 보여지는 모습은 연기만 피어오를 뿐, 왠지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안에서는 어떻게는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방사선에 노출된 채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음에도. 결국 원전의 원자로들은 폭발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물론, 엄청난 규모의 지진에 이은 쓰나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을까? 다시 그 비슷한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오면, 또 하릴없이 원자로의 폭발을 바라보며,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를 궁리해야 하나?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원자력 산업은 어떤 경로를 겪고 있었는지, 또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예상할 수 없었고, 또 막지 못했는지, 우리는 그걸 알고 싶다.
이미 《체르노빌》이라는 논픽션을 쓴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몇 년 간의 끈질긴 자료 수집을 통해 일본 원자력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전개와 문제, 그리고 여러 현장 인물들의 영웅적인 활약 등을 《후쿠시마》에서 적어내고 있다. 그가 고백하기를 처음에는 순전히 호기심으로 후쿠시마 사고 보고서를 읽게 되었고, 여러 감질나는 정보들을 추가하면서 더 많은 것을 알아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놀라운 것들이 많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깨끗하고 확장 가능한 전력원으로 원자력 발전”을 지지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체르노빌》도 그렇고 이 책 《후쿠시마》도 끔찍한 원전 사고를 다루고 있어 원전에 대한 반대편에 선 것 같지만, 원자력을 반대하거나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강조한다. 대신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원자력을 확대하든, 아니면 축소하든 어떤 결정이든 제대로 된 정보에 바탕을 둔 결정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개항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군국주의의 발흥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과 함께 패배로 끝난 전쟁, 그리고 재기. 재기의 과정에서 일부가 원자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원자력은 대안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모순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일본 자체의 문화에 기인한 것도 있고(대표적으로 저자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낙하산과 학벌을 지목한다), 일본 원자력 산업 자체의 문제도 있다. 일본의 전기 산업은 독점적이며 거의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우리나라나 유럽의 국가와는 달리 여러 민간 기업이 나눠 맡고 있다. 그중 가장 큰 기업이 바로 도쿄전력이고, 후쿠시마 원전 역시 도쿄전력의 것이었다. 원전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여러 속임수가 횡행했으며, 안전에 대한 대비책도 부족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굉장히 공을 들여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과거 지진에 대한 기록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의 쓰나미까지 대비해야 하는 시뮬레이션에 대한 요구가 있었는데, 마지 못해 수행한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예상한 쓰나미에서 파도의 높이는 2011년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봤다. 그것에 기초해서 방파제에 높이를 정했는데,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사실 제대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따랐다면 거의 2011년 쓰나미에서의 파도 높이에 근접했을 거란 보고서를 찾아내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2011년 3월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막을 수도 있었던, 혹은 그 피해가 그만큼에 이르지도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1970년대 이후의 원전 사고 역시 여럿 소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은 숨기기에 급급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아마 그 사고에서 교훈을 찾고 제대로 된 대비를 했다면 방사선에 피폭된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더 빨리 받고, 대피도 신속하게,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과정을 날짜별로, 시간순으로 서술하고 있는 장에서는 그 급박함과 더불어 그 안에서 혈투를 벌인 직원들의 모습을 담담하지만, 결국은 영웅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건 것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런 혼신의 노력이 없었다면 사태의 결과는 더욱 참혹했을 것이다.
이 사태 이후 우리나라 정부는 몇 년 간의 논의를 거쳐 탈원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탈원전은 폐기되었다. 원전이냐, 탈원전이냐 그 자체에 대해서 가치관에 달린 것일 수도 있으므로 그 얘기는 생략하기로 한다. 하지만 과연 그 결정의 과정이 얼마나 논의가 어느 정도나 심도 깊게, 폭넓게 이뤄졌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탈원전을 결정했을 때는 국가의 전력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함께 제시해야 하고, 원전을 지속하고, 확대할 것을 결정했을 때 안전에 대해서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줘야 한다. 일본과는 달리 지진이 드물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동일본대지진의 강도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지진에서 쓰나미가 어느 정도나 될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재난은 예측된 범위 내로 오지 않는다. 절대 일어나지 않은 정도를 대비해야만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정말 그러고 있는지 궁금하다.
《후쿠시마》를 읽은 내 감상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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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