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동양고전

初步
- 작성일
- 2024.3.12
국토박물관 순례 2
- 글쓴이
- 유홍준 저
창비
1권에서 선사시대와 고구려를 다룬 [국토박물관 순례]는 2권에서 백제와 고신라 그리고 비화가야의 유적지와 유물을 다루고 있다. 먼저 백제는 기존의 [답사기]에서 충분히 다루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 이후에 발견된 부여 능산리의 능사터와 여기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를 찾아간다. 능산리 주위에 총 18기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 고분군은 왕릉을 지키는 사찰인 능사가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부여 왕릉원으로 정비되었고,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고분군과 나성 사이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는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라는 백제미학의 진수가 녹아 있는 1500년전의 유물이라고 한다. 저자는 부여군에서 실시하는 실제 프로그램 ‘유홍준과 함께 하는 부여 답사’의 경로를 따라 백제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부여 백마강과 유왕산에 퍼져 있는 많은 유적지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680년의 백제 전시기에서 한성백제시대가 500년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웅진백제가 60년, 사비백제가 120년이었음에도 백제하면 우선 공주와 부여가 먼저 떠오르니 어디서부터 잘못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통일전 신라, 즉 고신라의 유적은 단연코 경주시내에 퍼져 있는 고분군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무덤이 교외에 있는 반면, 고신라시대의 무덤은 시내에 있으며 그 수는 대략 1천여기에 달한다. 저자는 처음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노동동/노서동 고분군의 금령총과 서봉총,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 황남대총을 차례대로 순례한다. 금관은 금관총이외 금령총과 서봉총에서도 출토되었으며 모두 일제시대에 발굴되었다. 반면 천마총과 황남대총은 해방 후 우리 손으로 발굴하였으며 역시 금관과 고신라의 황금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금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저자는 신라고분답사를 통해 신라금관 발굴기와 함께 경주 고분 발굴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신라의 황금문화는 4세기 중엽 마립간시기부터 금제품이 장신구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마립간시기가 끝나가는 6세기로 넘어가면서 퇴조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비화가야의 옛터인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야는 1세기 전후부터 6세기 중엽까지 낙동강유역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던 미완의 왕국이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한 문헌상의 자료는 빈약하지만 가야가 남긴 죽음의 문화인 가야고분은 6가야 전지역에 퍼져 있고 2023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고 한다. ‘빛이 좋은 들’이라는 뜻을 가진 창녕의 비화가야 고분은 200여기가 무리지어 있으며 5~6세기경 축조된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일제시대에 발굴되어 출토된 많은 유물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지만 그 유물은 가야문화의 높은 수준을 알려준다고 한다. 저자는 창녕의 비화가야 답사기는 가야답사의 프롤로그 격이며 본격적인 가야답사기는 [국토박물관 순례] 3권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말한다.
[국토박물관 순례]를 읽으면서 역사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1권에서 말한대로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말이 실감 있게 다가온다. 다음 권에서는 어떤 유물이 역사를 증언할지 기존의 [답사기]를 읽을 때처럼 또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겠지만 그 시간 마저도 기대된다.
삼국통일전 신라, 즉 고신라의 유적은 단연코 경주시내에 퍼져 있는 고분군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무덤이 교외에 있는 반면, 고신라시대의 무덤은 시내에 있으며 그 수는 대략 1천여기에 달한다. 저자는 처음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 노동동/노서동 고분군의 금령총과 서봉총,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 황남대총을 차례대로 순례한다. 금관은 금관총이외 금령총과 서봉총에서도 출토되었으며 모두 일제시대에 발굴되었다. 반면 천마총과 황남대총은 해방 후 우리 손으로 발굴하였으며 역시 금관과 고신라의 황금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금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저자는 신라고분답사를 통해 신라금관 발굴기와 함께 경주 고분 발굴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신라의 황금문화는 4세기 중엽 마립간시기부터 금제품이 장신구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마립간시기가 끝나가는 6세기로 넘어가면서 퇴조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비화가야의 옛터인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야는 1세기 전후부터 6세기 중엽까지 낙동강유역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던 미완의 왕국이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한 문헌상의 자료는 빈약하지만 가야가 남긴 죽음의 문화인 가야고분은 6가야 전지역에 퍼져 있고 2023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고 한다. ‘빛이 좋은 들’이라는 뜻을 가진 창녕의 비화가야 고분은 200여기가 무리지어 있으며 5~6세기경 축조된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일제시대에 발굴되어 출토된 많은 유물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지만 그 유물은 가야문화의 높은 수준을 알려준다고 한다. 저자는 창녕의 비화가야 답사기는 가야답사의 프롤로그 격이며 본격적인 가야답사기는 [국토박물관 순례] 3권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말한다.
[국토박물관 순례]를 읽으면서 역사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1권에서 말한대로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말이 실감 있게 다가온다. 다음 권에서는 어떤 유물이 역사를 증언할지 기존의 [답사기]를 읽을 때처럼 또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겠지만 그 시간 마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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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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