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미소설

백지답안
- 작성일
- 2025.4.28
흐르는 강물처럼
- 글쓴이
- 셸리 리드 저
다산책방
1900년대 중반 미국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과수원을 운영하는 한 여인의 인생 역경을 다룬 이야기다.
보통 소설을 보면 어떤 구체적 사건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그 인생에서 특정 사건이 주요 내용으로 다뤄지게 마련이다. 안 그러면 소설이 너무 밋밋하고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정말 소설제목에 딱 맞게 흐르는 강물처럼 글이 전개된다.
주인공의 인생 여정을 보면 연인의 죽음, 아이와의 이별, 아버지의 죽음, 힘이 돼줬던 이웃 할머니의 죽음, 터전의 상실과 이전 등등 굵직한 사건이라 할만한 일들이 이어지는데, 글은 그 지점에서 멈추지를 않는다.
물론 주인공은 그 지점들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하지만, 그 시간에 멈춰있지는 않는다. 시련과 아픔을 당연히 맞아야 되는 파도처럼 맞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너무도 연약했던 주인공이 삶의 문제들에 대해 조금씩 용기를 내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흐르는 강물처럼 전개되는 소설이다.
281페이지.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고했다. 새로운 삶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지난날의 선택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의심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지금을 지나야만 그 다음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가 없고 초대장이 없더라도 눈앞에 펼쳐진 공간으로 걸어 나가야만 한다. 그건 윌이 가르쳐주고, 거니슨강이 가르쳐주고, 내가 생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마주했던 곳인 빅 블루가 끊임없이 가르쳐준 진리였다. 그것이 옳고 그르든, 내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가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걸 믿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이 장례식을 끝으로 아이올라와 나 사이의 인연의 끈이 끊길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곧 내길을 떠날 것이다.
난 내 인생에서 머뭇머뭇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원망, 분노 등의 감정으로 삶을 정체시켰던 순간들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보니, 그럴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행운을 가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라도 멈춰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건이 되니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대뜸 주인공에 대해 들었던 느낌이 생존형 여자 스토너 같다는 생각이었다. 스토너보다는 여자라는 점에서, 환경적인 면에서 조금 더 세상에 휘둘리며 살아야 하는 생존형 스토너 말이다. 성별과 직업, 지적 수준 등에서 차이가 큰데도 이 둘이 왜 이리 비슷하게 느껴진 걸까. 스토너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사랑과 문학이었다면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사랑과 터전 같다.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사랑과 직업인가보다.
스토너가 문학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삶의 터전이었던 과수원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295페이지.
예전에 윌이 여기나 저기나 똑같다고 했을 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윌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나를 받아줄 곳이 아무 데도 없으면, 모든 곳은 그저 아무 곳도 아닌게 된다. 내 악몽에서처럼 땅조차 믿을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이다.
달 끝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검게 변한 하늘에서 별이 뿌려지자 나는 축축한 풀밭에 무릎을 꿇고 부디 이 땅에 축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나무들과 함께 이곳을 집으로 삼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죽는 날까지 이 땅을 아끼며 돌보겠다고 맹세했다.
어떤 식으로든 응답받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엇보다 원했지만 그동안 결코 인정하지 못했던 기도를 덧붙였다. 기적이든 운명이든 내 아들이 내 품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이 땅과 더불어 내 아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면, 여기나 저기나 똑같은 곳이 아니라는 걸 아들에게 가르쳐주겠다고. 광대하고 알 수 없는 이 세상 속 한 뙈기의 작은 땅이 우리를 이어준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겠다고 기도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의 의미가 되는 일이 있었기에 스토너도 내시도 행복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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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