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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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리커버] 어린 왕자
글쓴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9.3 (559)
금비



 


한 다섯 번째 읽는 건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10대 20대 30대 한 번 이상씩 읽은 유일한 책이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황현산 선생님의 번역본으로 출간한다는 소식 듣고 냉큼 서평단 신청을 했다. 운좋게 책을 받을 수 있었다. 표지는 사화산 굴뚝(분화구)을 청소 중인 어린왕자였다. 나의 머릿 속에 깊이 박힌 어린왕자 독사진(?)이 아니다. 십대 때 산 어린왕자 책의 표지는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함만큼 머릿 속에 박혀버린 '어린왕자'의 모습이다. 딱, 저 그림이 이십여년도 더 된 내가 소장한 책의 표지그림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써야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썼던 책이 [어린왕자]다. 삼십대 중반을 넘어가는 이 나이에도 [어린왕자]의 감동은 여전할까. 행여 괜히 이번에 읽었다가 지금껏 읽은 그 느낌이 사라질까 조금은 두려웠긴 했다.




기우였다.




[어린왕자]를 읽는 동안 더 세심하고 풍요로운 감동의 맛을 보았다. 짧은 글력으로 순간 느꼈던 감정들을 일일이 설명할 순 없다. 이번에 읽을 땐 '여우와의 만남' 외의 것에 더 집중해서 읽어야지 다짐하였지면 역시나 '여우와 어린왕자의 대화'는 일품이었다. [어린왕자]가 풍자하는 어른들에 대한 묘사는 어느새 그 모습들을 닮아가고 있는 나에게 가하는 일침같기도 했다. 한때 나도 비꼬곤 했던 어른들의 모습이었으니까 얼굴이 화닥거렸다.




​내 기억에 없어진 부분들이 복원되는 기분이었다.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채워갔던 순수한 감정들이 어디에서 왔었는지, 그 감정을 꼭대기에 두고 갈래갈래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조종사가 왜 이 글을 쓰는지에 대한 설명이 새롭게 들렸다. 조종사는 기억을 더 잃기 전에, 그렇지만 슬픔은 가라앉았을 때가 되어서야 어린왕자를 만난지 6년만에 이 글을 썼다. 여섯 살 때 접어버린 화가의 꿈과 함께 그림도 접었던 것을 어린왕자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림물감과 연필 몇 자루까지 샀다. 그가 애써 그려갔을 그림들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실제 어린왕자를 만나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훌륭했다. 우리 안의 어린왕자가 이젠 이렇게 각인되었다. 보아뱀 뱃 속의 코끼리는 보지 못해도, 상자 속의 양은 보지 못했도, 어린왕자의 모습은 영원히 금발의 소년일 것이다.




어린왕자는 뭐가 그리 슬펐길래 하루에 마흔 네 번의 해넘이를 보았을까? 슬플 때는 누구나 해가 저무는 게 보고 싶다고 장담하는 어린왕자의 확신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조종사는 어린왕자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적극적인 자세로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경청했다. 조종사 자신도 사막 한가운데 조난당한 상태임에도...




어린왕자에 초점을 맞춰 책을 읽게 되지만 이번엔 조종사에 맞추어 이 글을 읽는다. 원래 [어린왕자]의 화자는 조종사이지만 이제까진 조종사의 화자가 아닌 어린왕자의 관점으로 읽고 해석했던 것 같다. 어린왕자만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이번엔 조종사를 바라봤다. 일부러가 아닌데도 자꾸만 조종사의 관점에서 읽게 됐다. 내가 조종사처럼 기성세대로 진입했기 때문일까. 조종사=생떽쥐베리로 이입해서 읽었다.이것 역시 자동 셋팅이다. 생떽쥐베리의 이력을 대충이라도 안다면 아마도 다들 그렇게 읽어갈 것 같다.



 왕자가 해준 여러 행성들 여행이야기나 어린왕자의 장미에 관한 이야기를 실제로 듣는 척 해본다. 지구에서 만난 꽃이 해준 얘기 "바람이 사람들을 몰고 다니지. 그들은 뿌리가 없어서 아주 곤란을 겪는 거야." (76p) 어린왕자도 사람이니까, 어쩌면 어린왕자가 살던 장미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뿌리가 없으니 흔들리고 떠돈다고. 어린왕자를 기다리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왕자와 조종사는 사막 속의 우물을 찾아 나선다. 우물이 있기 때문에 사막이 아름답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지만 우물을 보는 순간 사막이 아름다워보인 것은 사실이다. 우물에서 길은 물에 대한 묘사가 마른 논에 물들어가듯이 나의 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그는 눈을 감고 마셨다.  명절이나 되는 것처럼 즐거웠다. 그 물은 보통 음료수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 물은, 별빛을 받고 걸어온 발걸음과 도르래의 노래와 내 팔의 노력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선물처럼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에도 이처럼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 자정 미사의 음악, 다정한 미소들이 바로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빛나게 했다." (100p) 어린왕자가 목을 축인 후 한 말은 또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풍요로운 지구에서 사람들이 자기가 구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장미꽃 한 송이에서도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을텐데......."(100p)


 



(마지막 장면)




이제부터 쓰는 글은 내가 기억하기 위해 써놓는 것이다. 조종사와 어린왕자의 이별 장면이다. 서로에게 길들여진 관계이기에 이별의 순간은 슬프고 그 슬픔은 오래 간다. 조종사에겐 무려 6여년 간 어린왕자를 만난 얘기를 그 어느 곳에도 못했을 정도로 아련한 슬픔으로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어린왕자는 떠나려 한다. 이별의 아픔을 짐작한 왕자는 어른인 조종사에게 어른 같은 말을 한다. 왕자가 말했던 이별 순간의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옮겨 놓을 것이다. 별에 비유한 이별과 추억에 대한 왕자의 말은 이미 나에게도 치료제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슬픔 비슷한 감정들이 내 온몸을 휘감는 날이면 왕자의 말들을 다시 읽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책을 찾아보기엔 불편하니 터치 하나로 어린왕자의 말을 찾아 볼 수 있게 여기에 적어 놓는다.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그 별들 중의 어느 별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일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지!"




"그리고 아저씨는 슬픔이 가라앉으면(슬픔은 언제고 가라앉아) 나를 알았다는 게 기쁠 거야.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내 친구일 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을 거야. 그래서 가끔 이렇게 재미로 창문을 열 거야. 그럼 아저씨 친구들은 아저씨가 하늘을 쳐다보며 웃는 걸 보고 깜짝 놀랄 거야. 그럼 아저씬 이렇게 말할 거야. <그래, 나는 별을 보면 늘 웃음이 나와!> 그럼 아저씨가 미친 줄 알 거야. 내가 아저씨한테 너무 심한 장난을 한 것 같은데......."




"참 포근할 거야. 아저씨도 알잖아. 나도 별들을 바라볼 거야. 별들이 모두 녹슨 도르래를 달고 있는 우물이 될 거야. 별들이 모두 내게 마실 물을 부어 줄 거야......"


 


번역자가 달라졌다고 해서 [어린왕자]의 내용과 색깔과 감동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역자에겐 단어 하나 철자 하나에도 고심했을테지만 [어린왕자] 자체가 현학적인 문체가 아니라서 번역서마다의 차이가 크진 않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러나 황현산 선생님 당신도 이름에 황현산이란 이름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와 무게를 알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정성들이고 신경 써서 번역을 하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더 다듬고 닦아서 광을 내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잘 보여주기 위해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고쳐 나가셨을 것 같다. 그냥, 그런 믿음이 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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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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