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步
  1. 사회/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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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인생극장
글쓴이
노명우 저
사계절
평균
별점9.1 (35)
初步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한다
. 부모가 유명인이라면, 혹 그의 자서전이
있을 수도 있고 그가 쓴 책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자세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게다
. 물론
그것들이 전부 진실이냐 하는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 그렇지만 그저 그런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버지이기 이전에 꿈 많은 소년이었고
, 어머니에게 자신들과 같은 처녀시절이 있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학자 노명우는 자신이 직접 부모의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허나
부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 단지, 초라하게 남긴
그들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을 뿐이다
. 그들의 막이 내리고 난 다음,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이야기는 시작되는 셈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역시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기에 자서전을 각색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공유했던 소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되기 때문이다. 무명씨들은 아마 자신의 심정을 숨기는 재주를
키우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 심정은 노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아무리 그런 재주를 키우며 평생을 살아왔어도, 그것을 아예 억누르기는 불가능하기에
심정은 슬그머니 꼬리를 드러낸다. 그 꼬리를 따라가면 우리는 어떤 증상과 만난다. 그 증상은 심정이라는 핵으로 가만가만히 다가갈 수 있는 통로이다.’
(27)



 



  그래서 그가 통로로 삼은 것은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대중영화였다
. 책이나 신문은 엘리트 미디어였기에,
식민지시대와 해방 전후를 살아온 그저 그런 사람들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접할 수 있었던 대중영화야말로 그들의 심정으로 다가갈 수 있는 통로라고 여긴 것이다
. 대중영화에는 특정시대의 소망이 담겨있다. 대중영화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은 채 보통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기대를 재현한다. (…) 부모가 공감했을 당대의 욕구와 열망의 흔적을 대중영화를 통해 추적하는 것이다.’ (42)



 



  그는 식민지시대를 살아낸 아버지를
생각해본다
. 그러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년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찾은 외국인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나 식민지시절 제작된 영화들
, 그리고 일제의 선전영화 속에 나타난 소년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 식민지시대 보통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식민세계에 들어감을 의미했다. 보통학교는 농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일본어를 배우는 경로였다. 식민화로 유교적 가치가 붕괴된 나라에서 공부는 그렇게 단지 출세를 위한 도구로 기능했다. 식민통치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그 몰락의 흐름에서 나만이라도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자라났다. 개인에게
탈출구를 제공하는 수단으로서의 공부, 그에 대한 물신적 집착은 각자도생을 생활윤리로 채택하게 했다.’
(82) 그러나
누구나가 다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식민지하의 그저 그런 소년/녀들은 기껏해야 보통학교를 졸업하는 정도였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보통학교를 마치고 당시의 붐을 타고 만주로 향했고
, 강제징용의 대열을 따라 나고야에 가기도 했다. 야심이
넘치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내던져진다 해도 자신을 가두고 있는 껍데기를 뚫고 나와 의지를 펼친다. 모든
인간이 그렇지는 않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껍데기를 그저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에 적응하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
(106)



 



  전쟁 통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고아가
되었다고 한다
. 그저 그런 가정에서 그저 그런 아이로 태어났다는 것은 식민지시대나 전쟁 전후 모든 시기를
힘들게 살아냈다는 것과 동의어이지만
, 거기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쩌면 형벌과도 같았을 것이다. 전쟁은
거대한 상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을 살아낸다. ‘삶을
산다라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사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 즉 악착같이 버텨야만 하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184)



 



  전쟁이 끝나고, 4.19혁명이 일어나고 5.16쿠데타 그리고 10월유신이 이어져도 그저 그런 우리의 부모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서로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각자도생의 삶은 여전했다.
국가는 그런 사람들을 가르쳤다.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모든 관객은 애국가를 부른 뒤 <대한뉴스>와 문화영화를 봐야 했고, 거기서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다. 영화를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대중화하려는 창구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어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371)



 



  ‘아이들이 학교에서 국민이
되는 방법을 배우고 상식을 익혔다면, 학교를 다니지 않은 어른들은 영화관의 <대한뉴스>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 <대한뉴스>는 마치 전국민을 대한민국이라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처럼 대했다. (…) <대한뉴스>의 보살핌은
세심하고 자상했다.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명쾌한 구호로 알려주었다.’

(372
) 그렇게
교육받은 우리 부모세대는 식민지시대 핍박 받고, 전쟁통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상처입고, 산업화시기 죽어라 일만 했음에도 <대한뉴스>가 가르쳐준 대로 그것이 당연한 국민의 길로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니 설사 국가가 자신들을 배반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저 그런 우리 부모들의 자서전이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저자는 자신의 부모님 자서전을 쓰면서
부모님들이 살았던 공간은 물론 자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
, 그리고 동시대인이 살아낸 삶을 복원하고
있다
. 그러나 그것은 바로 노인이라 불리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자서전이었다
. 그들은 무식하기에 노인빈곤인구로 분류되면서도 나라가 잘살면 자신도 잘 살게 될 거라고 착각한다. (…) 그들의 무지는 그들의 죄가 아니다. 그 죄는 그저 그런 사람들을
자신이 연출하는 인생극장의 엑스트라로 동원해놓고, 그들의 무지를 이용해 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430)



 



  나도 부모님들의 자서전을 써 본다.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철 들고 나서야 그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것도 같지만
, 그 이전의 인생이야기는 뿌옇기만 하다.
역시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을 삶을 통해 내 부모님의 인생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 그렇게 본다면 그분들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 그럼에도 그분들의 인생극장이 막을 내린 다음에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못내
가슴이 아플 뿐이다
.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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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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