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동양고전

初步
- 작성일
- 2012.5.3
마약의 역사
- 글쓴이
- 조성권 저
인간사랑
지금은 뜸하지만 예전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대마초를 피운 연예인들이 구속되곤 했다. 또 청초한 이미지의 여자 연예인이 환각제를 먹고 정사(情事)를 했다고 해서, 환각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히로뽕의 밀매를 둘러싸고 조직폭력배간의 다툼이 간혹 신문지상을 달군다. 청소년들은 부탄가스를 흡입하여 환각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마약을 재배하고, 밀매하는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현대사회는 마약성분을 지닌 약물을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것이 법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떠나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또 하나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국내학자가 쓴 책이다. 국내에서 마약학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국내에서 미개척분야인 마약학의 학문적 토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하여, 이 연구를 했다고 한다. 마약학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마약이 인류역사의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객체중의 하나이지만, 역사의 주체인 인간과 객체인 마약과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을 통하여 마약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흔히 우리가 마약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천연마약과 합성마약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천연마약이라 함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있어 왔던 야생마약이다. 우리가 대마초로 알고 있는 마리화나, 아편이라 불리는 양귀비, 그리고 코카 잎이 그것이다. 그에 반해 합성마약은 19세기 화학의 발전과 함께 개발된 모르핀, 헤로인, 코케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 합성마약은 천연마약의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우리가 흔히 히로뽕이라 부르는 마약도 합성마약이며, 이는 각성제인 메스암페타민의 상표명이라고 한다.
마리화나나 아편과 같은 천연마약은 기록의 역사가 시작되는 BC3000년경 이미 기록 속에 등장한다. 신화시대, 신화를 구성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에 대한 신념이며, 따라서 신화는 애니미즘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신화가 정신적 존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포함하기 시작하면서 종교적 창조로 이어지고, 이는 샤머니즘으로 발전된다. 이때 주체는 의식을 관장하는 샤만이었고, 샤만은 초월적 체험을 보여주고, 신화를 재현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식에 필요한 것은 환각상태였고, 이를 위해서는 향정신성 마약식물이 필요했다. 그러기에 각 지역 신화의 창세기에는 어김없이 신비한 식물이 등장한다.
인류가 정착생활로 전이하는 과정에서 샤만은 공동체의 지배계급화 했으며, 이는 마약식물에 관한 지식이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문자의 발명과 기술의 진보는 샤만의 몰락을 가져왔지만,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세습적 권력 엘리트 역시 마약을 권력유지의 도구로 사용했음을 역사의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리스-로마시대에 이르러 마약에 내포된 종교성과 초자연성이 사라지고, 처음으로 과학적 입장에서 마약이 해석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마약을 치료제와 진정제로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신화시대 마약에 내포된 종교적 희생양의 의미를 지우고, 치료제 혹은 독약이라는 약리적인 이중성을 뜻하는 과학적 의미의 마약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되어가면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공고화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마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정하면서, 그들의 마약사용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단과의 투쟁에 적합한 무기로써 마약과 알코올을 들었고, 이것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종교적 희생자로 삼았고, 이는 중세시대 마녀사냥으로까지 이어졌다. 마녀사냥은 중세 말과 르네상스 시대, 종교적 지배계급이었던 가톨릭 교회가 헤게모니를 위협받는 위기의식 속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경제적 지위가 낮고, 피지배계급인 여성을 마약, 섹스와 연결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종교적 탄압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는 그전까지 마약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개인의 자유에 의한 개인적 선택의 문제였던 것을 정치적 희생양의 수단으로 변질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마약은 다시 한번 새로운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중세시대 악마의 선물이었던 마약이 다양한 통증뿐만 아니라, 전염병의 치료에도 이용되는 의약품이 되어감에 따라 신의 선물로 새로운 해석을 받은 것이다. 이후 아편으로 대표되는 천연마약은 중상주의 발전과 함께 국가간 무역상품이 되었다. 19세기 마약은 이제 인간에게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과학의 발전은 합성마약을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마약의 중독성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 19세기 유럽사회는 합성마약의 놀라운 발견과 그것들의 무분별한 사용과 남용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또한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에서 보듯 마약은 경제적 수탈을 위한 제국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20세기 초반, 헤이그아편협약이 제정되면서 마약은 불법화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마약의 불법화는 마약 사용자 및 마약 밀매자에 대한 처벌의 강화로 이어졌고, 이는 마약 밀매에 관여하는 국제조직범죄의 부상과 성장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그 결과 20세기 후반은 가히 국제마약 밀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제3세계에서 생산된 마약은 국제범죄조직을 통하여 정제되고, 운송되어 선진국에서 소비 된다. 그 과정에서 국제범죄조직은 서로 연계하였고, 미국 CIA는 냉전시기에는 제3세계 마약생산지에서 활동하는 반공게릴라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친미정권을 세우는데 마약밀매를 이용하였다. 미국의 그러한 태도는 마약과 테러조직의 연계를 가져왔고, 이는 결국 글로벌차원의 조직범죄를 급성장 시켰으며, 마약관련 부패 및 폭력적 투쟁을 가져왔다. 이러한 이중성이 마약의 불법화에 따른 너무나도 값비싼 대가라고 저자는 말한다.
마약에 중독되는 원인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통과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그러했다. 다른 하나는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20세기말 이후 오늘날까지 마약문제를 일으키는 부류가 대부분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제는 일부 부류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약이 지니는 향락에 대한 속성은 꿈을 잃은 사람들 모두에게 유혹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는 우리 모두를 극한경쟁으로 내몰면서,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고, 사소한 유혹에도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
21세기 들어 세계화의 부정적 현상들은 더욱 증폭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국제범죄조직의 손으로 넘어간 마약밀매 또한 그 중 대표적인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마약은 향락과 함께 파멸이란 속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신적인 상실감과 육체적으로 피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그것은 또 다른 욕망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러한 때, 이 책 [마약의 역사]는 헤게모니 국가의 마약에 대한 이중적 태도와 그리고 시민사회와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연구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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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