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세계에서 각자가 살고 있을 뿐이다. 무엇을 현실이라고 인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네가 인식하는 세계와 내가 인식하는 세계, 그러니까 우리는 몸으로는 한 공간을 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는 법이다.

간첩이나 스파이를 다룬 영화를 볼 때,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현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저런 것들은 다 영화일 뿐이라고, 영화적 재미와 찰나의 흥미를 위해서 그런 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 소비한 후에는 잊는다. 왜? 현실이 아니니까. 그러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어떤 기록 혹은 어떤 사건과 같은 현상의 조각들은 말한다. 이것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현실이다. 그 현실은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권선징악,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양심선언이나 진실 고백 등을 소설이나 영화에게 기대하는 마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거듭 추리 소설을 읽고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죽였다]는 2018년 CJ ENM과 카카오페이지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회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의 저자 정해연은 2013년 장편소설 <더블>을 발표했고 이후 YES24에서 주최한 e연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와 <악의-죽은 자의 일기>, <지금 죽으러 갑니다> 등 여러 작품들을 펴낸 작가다.

[내가 죽였다]의 변호사 무일과 형사 여주를 두 축으로 흘러가는 추리소설이다. 사고사로 종결된 7년 전의 사건의 진범이 자신임을 주장하는 남자와 그 남자가 살해당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선명한 캐릭터와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가 재미있다. 카카오페이지 연재 당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다.

개인적으론 결말마저 마음에 든다. 정의는 없다. 하지만 도의는 살아 있다. 현실에서는 답이 안 나오는 권선징악을 소설에서 찾겠다는 순진한 독자는 아마 이제 더는 없으리라. 그러나 현실에서 눈 씻고 찾아보면 간혹 보이기도 하는 도의라면 어떨까.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정말로 의리 있고 도리를 아는 좋은 사람들을, 소설에서 이토록 선명하게 만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이 책이 시리즈이기를, 무일과 여주가 등장하는 다음 편도 빨리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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