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는 에세이다. 저자는 개인적 고난과 혼란을 단순히 극복의 서사로 소비하지 않고, 그것을 과학과 존재론의 경계에서 재구성한다. 자신의 생애를 하나의 ‘돌파 도구’로 삼아 세계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신선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설정한 ‘기준’의 허구성과 한계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책의 핵심은 결국 ‘아무것도 아님’, 즉 무(無)와 혼돈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처음에는 과학적 분류, 인간의 우월성, 어류의 기준 등 명확한 경계로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그러한 기준은 결국 과학 내부에서도 반박되고 붕괴된다. 그러나 그 붕괴 이전의 ‘피해자들’?기준 밖으로 밀려났던 존재들?은 여전히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이 어떠한 체계나 규범으로도 완전히 설명될 수 없음을, 그리고 그 불가해함 속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저자는 기준 바깥의 삶들을 통해 기준 자체의 덧없음을 드러낸다. 이로써 독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적·지적 체계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고정된 기준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나? 라고 스스로 묻게된다. 나는 권위가 싫다고 하면서 내가 귄위속에 살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타인이라는 존재를 내가 판단하고 재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원과 도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난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뭘까. 결국 이는 다양성(diversity)의 문제와 깊이 연결된다. ‘종의 기원’이 동일성을 위험 요소로, 다양성을 생존의 조건으로 본 것처럼, 사회 역시 다양한 존재 방식을 존중할 때 건강해진다. 늘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낯설고 불편한 방식이라도, 그것이 공동체에 필요하다면 기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앎, 무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했다. 다소 철없이 들릴수도 있지만 '모르는건 죄가 아니다' 라는 말을 진리처럼 여겼다. 그래서 어디서든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학위를 마무리하고, 전문가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을때, 더이상 나에게 "모르는건 죄가 아니다" 라는 말이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모든걸 알아야 하는건 아니다. 불가능하다. 그건 ChatGPT나 가능하다. 그럼 나는 내가 모른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정신의 우울감을 이겨내고 한발짝씩 나가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으 일종의 믿음같은게 아닐까. 내가 모든걸 안다는 믿음. 그것이 불가능함에도 말이다. 안다라는 것은 어떤 사안을 두고 양면을 모두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책 속 루루의 아버지가 말했듯, 인생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은 허무가 아니라, 특별한 성취가 아닌 일상 속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가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우리가 ‘진리’라 믿어온 것들도 사실은 잠정적 신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혼돈을 찬양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행복이라 여기는 힘?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궁극의 통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