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갑내기 여선생님 두 분과 함께 ‘고전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같은 과 동기에게 내가 먼저 제안했고 친구가 흔쾌히 승낙하길래 용기를 얻어 옆에 앉은 짝지 선생님도 끌어들였다. 3명이서 일단 출발하기로 했지만 모두 사회과라 책 선택의 고민은 적었다. 고전 중에서도 문학보단 인문 사회과학 쪽으로 합의가 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0월의 책읽기 선정도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안광복 선생님이 추천하셨던 인문학 추천 도서 100권을 리스트 삼아 선택한 도서였다. 사회를 가르친다는 교사가 정치철학과 관련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만회하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이미 내게 있는 서해문집출판사의 『군주론』을 선택하지 않았다. 같은 책도 출판사와 역자가 아주 중요하다. 까치글방의 『군주론』을 선택한 이유는 역자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전공한 학자라는 사실과 이미 출판된 번역본을 가지고 이탈리어로 출간된 원본을 대조하면 개역한 책이라서 신뢰가 갔다. 그들의 노력 덕분인지 부담감을 안고 출발했던 책읽기가 기대 이상으로 잘 읽히고 재미있었다.

『군주론』에 담긴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유럽의 변화가 격심해지던 시기에 나왔다. 그래서 근대 사상을 배울 때 결국 『군주론』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유럽사회의 문화를 주도한 이탈리아는 분열의 시기였고 그 중 피렌체 공국에서 공직을 역임했던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피렌체가 이탈리아의 통일에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디치 가문의 재집권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마키아벨리가 집권자 로렌조 메디치에게 헌정하기 위해 썼다고 하나 이 책이 과연 로렌조 메디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 것인가 하는 관련 해석은 아직도 분분하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 지배체제가 공화정보다 군주제로 옹호했으며 따라서 군주의 강력한 집권과 리더쉽을 강조한다. 군주에게는 운명(fortuna)과 역량(vitru)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훌륭한 군주 여부로 갈린다 보고 가장 근접한 모델로 알렉산드로 6세 교황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76~1507]를 내세운다. 끝은 좋지 않았지만 그것은 역량의 문제보다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며 굉장히 아쉬움을 드러낸다.

마키아벨리가 가진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을 사악하고 욕심 많으며 변덕쟁이로 보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인민들을 믿어서는 안되며 관대함이나 호의보다는 군주가 두려운 존재로 인식될 수 있도록 잔인함을 보일 필요도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15~16C) 유럽은 종교에 대한 불신과 교황과 황제의 대립 등으로 종교의 권위가 많이 실추된 상황이었기에 군주에게 많은 권한과 힘을 실어주는 마키아벨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군주론』을 읽으며 계속 드는 생각은 ‘왜 이리 익숙하지?’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와 비교한다면 입헌군주제가 아닌 전제군주제는 오늘날 이념과 맞지도 않을뿐더러 거부감이 들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군주론』에서 익숙함이 계속 느껴졌으니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 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 이유를 내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미 우리 정치권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군주의 처세술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즉,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바가 과거에도 그랬고 현실에서도 그랬고 정치권력의 공간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윤리와 도덕적인 부분에 접목하여 판단한다면 『군주론』의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하다. 인민을 은혜도 모르고 위선적이며 사리사욕에 앞서는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데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군주가 인민의 눈치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호의적인 인민들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71p)이다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래서 근대 사회계약사상으로 가는 길목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나보다.

인간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던졌던 마키아벨리. 과연 로렌조 메디치가 마키아벨리의 마음을 받아주었을까? 안타깝게도 로렌조 메디치는 마키아벨리의 마음, 즉 『군주론』을 한 번도 펼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권력 앞에 자진해서 무릎 꿇으려 했던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산을 몰수당한 채 시골에서 말년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여년이 지난 21세기에도『군주론』을 읽으며 감탄하는 것을 보니 정치권력의 장(場)에서 일어나는 인간사의 복잡한 구조적 본질을 솔직하고도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인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군주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정치인을 경계해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배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필요하기에.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고, 신의가 없이 처신하고, 무자비하고, 반종교적인 것을 덕(vitru)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영광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62p

★오타의심★
144p 두 번째 줄 '고래' -> '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