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잡은 이 책은 나를 과거 1859년으로 데려다주었다. 언젠가 장난삼아 이름과 생일을 넣으면 전생을 알려주던 사이트에서.. 나의 전생이 영국 산업혁명시대의 거지였다는 결과에 당혹스러웠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1859년.. 11월 다윈이 진화론을 내놓은 바로 그 해.. 내가 거지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영국 중심으로.. 전생의 결과를 보고 피식~ 엉터리라고 외쳤던 나는, 이야기가 쏙쏙~ 재미있는 것이.. 어쩌면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전생을 기억해 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잠깐 스치는 생각에 허걱~ 놀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이것은 순전히 작가가 글을 너무나.. 잘.. 환타스틱.. 재미나게 썼기때문이라고..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럼 그럼 그럴리가 없다..거지였다니.. 자, 이제 진정하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기로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다윈의 진화론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1859년을 기술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격변의 한 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그 해를 말하고자 했다. 인류의 인식을 바꾼 진화론도 급변하던 시대 흐름 속에서 탄생한 하나의 징조였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1859년에 중요한 것은 속도였다. 새로운 재료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새로운 착상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새로운 착상, 새로운 방법, 새로운 지식은 모두 속도를 창출하는 데 일조했고, 그렇게 해서 얻은 새로운 속도로 전 세계를 질주했다.(68p) 1859년..그 해는 새로운 생각과 지식..전보와 기차로 세상은 점점 다양해지고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상에서는 혁신적인 트렌드가 만들어져 유행을 선도하고, 과학과 의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나날이 발전했다.

하지만,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혹은 다른 여타의 영화나 영상물에서 보여졌던.. 많은 이들의 암울하던 삶은 1859년.. 특별히 빠르게 개선되지 않았다. 우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부자들의 삶과는 너무나 다르게.. 여전히 가혹한 나날이었다. 범죄는 무성했고, 아이들조차 힘든 일터로 내몰렸으며, 모두가 노동에 시달렸다. 굶주리는 사람도, 엉망인 위생상태 때문에 병들어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부자들조차도 전염병이나 알려지지 않은 질병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고, 신체적인 질병 말고도 다양하게 나름대로 타락하고 병들어갔다. 사람들은 분명 불편했을 것이다. 신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이 가난과 질병을..

그리고 1859년 11월.. 다윈은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비록 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론은 과학 이외의 사회현상에도 꽤 쓸모있게 적용되었다. 가령, 그의 자연선택설은 노예제를 옹호하는 방패로 쓰이기도 했다. 1859년에 빅토리아 여왕의 지도 신부로 임명된 찰스 킹즐리는 다윈을 지지했다. 그렇지만 몇 년 후에 그는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을 이용하여 일반적인 인종주위를 정당화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해방된 노예들이 자메이카 섬에서 일으킨 폭동을 잔혹하게 진압한 식민지 총독 에드워드 존 에어의 말썽많은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176p) 과연, 그의 자연선택설이 이렇게 해석되어질 것을 다윈은 짐작했을까? 다윈은 사실 어떤 형태의 노예제도 혐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그의 과학적인 이론은.. 사람이 사람을 부리는 노예제를 옹호해 기득권을 보호해 주었고, 신이 우리를 버리고 가난과 질병에서 구원하지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로부터 모두를 구해주었다.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을, 자연으로부터 선택되지 못한 열성 인자로 규정하는 것으로, 세상의 이치,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는 불편한 진실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진화라는 생각이 찰스 다윈에게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397p)..그러나 찰스 다윈은 자신의 자연선택 개념을 옹호하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증거를 마련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398p) 그렇다면, 그는 어디서 자연선택설을 생각해 내었을까? 이 책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사실 다윈보다 반세기 전에 토마스 맬서스라는 사람이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장 지글러는 토마스 맬서스의 주장을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맬서스는 1798년에 인구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어. 이 논문에서 맬서스는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상의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41-42p) 다윈이 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킨 맬서스의 주장을 모르지 않았을 터.. 나는 다윈이 맬서스의 이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짐작해본다.

사실, 저자가 이 책에서 쏟아내는 1859년의 일련의 변화와 사건이 진화론과 다윈을 위한 꼭두각시나 탄생비화 혹은 배경으로 다윈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매년 이맘때 즈음..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 하며 10대 뉴스를 꼽아내듯.. 저자는 무수한 변화의 시발점이 된 1859년을.. 다윈이 보고 느꼈을 그 격변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수를 우주의 근본으로 보고 각 수에 집착하듯.. 유난스럽게 1859년에 집착하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퍼즐을 맞추다보면, 급변하던 그 해의 큰 그림과 그 큰 그림속에 있는 다윈의 진화론을 볼 수 있고, 다윈과 그가 살았던 그 시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첫사랑.. 좋아하던 사람의 주변을 서성이며.. 그의 모든 것이 궁금했던 기억이 있으신가? 찰스 다윈에게 관심이 있으신 모든 분들께.. 다윈의 주변을 서성일 수 있는 특별한 과거 여행을 가능케하는..이 한 권의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