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쟁이
  1. 내 맘 속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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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글쓴이
엘레나 페란테 저
한길사
평균
별점8.8 (94)
분홍쟁이



 



60년에 걸친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가 마침내 끝을 맺었다. 총 4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그 중 어느 한권도 허술하게 쓰여진 책이 없다 여겨질 정도로 촘촘한 구성과 세밀한 내면 묘사로 읽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한 대작! 매번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끝을 맺어 다음 책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던 4권의 제목은, 읊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덜컹하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다. 부디 상징적인 의미이기를, 그 누구도 아이를 잃는 아픔만은 겪지 않기를 바랐던 희망과는 달리, 두 명의 여성 중 한명만 품안에 아이를 안고 있는 표지에서부터 불길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이 낳은 두 딸조차 내버려둔 채 니노를 따라 그의 학회에 따라나선 레누. 학회 기간 동안 그들은 꿈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향한 맹세를 조금도 멈추지 않는다. 각자의 가정과 결별하고 서로 함께 하게 되기를 바라는 레누에게, 이제 피에트로와의 관계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처음에는 미안한 감정이 다소 있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이혼과정이 고통스러워지자 시어머니에게조차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레누를 바라보면서, 대체 어떻게, 얼마나 대단한 사랑에 빠져야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도 개의치 않을 수 있나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레누의 책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게 되면서 출장이 잦아진 그녀.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는 아이들-데데와 엘사-의 외침도 그저 한순간일 뿐, 집을 떠나 강연을 하고 책과 관련된 일이 진행될수록 레누가 느끼는 감정은 자유 뿐이다. 그리고, 니노를 향한 멈추지 않는 열망만이 오직 레누를 움직이게 했다.



 



나폴리에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해놓았다는 니노. 하지만 역시 니노는 니노였다. 어찌됐든 이별의 과정을 거친 레누에게, 그는 현재 아내가 임신 7개월이라 끝내 이혼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말을 전한다. 나는 이미 니노가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고, 작품 속 레누를 향해 '이제 제발 정신을 차려라'고 외쳤지만, 레누의 열망은 니노의 변명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결국 니노의 아이를 임신한 레누. 마침 비슷한 시기에 엔초의 아이를 임신한 릴라. 임신을 계기로 그녀들의 소원했던 사이가 다시 가까워진다. 그리고 태어난 레누의 딸 임마와 릴라의 딸 티나. 파렴치하고, 뻔뻔스럽고, 더러운 니노의 외도들이 발각되고, 레누는 그와의 관계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다. 잠시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만, 예전에 써놓았던 작품이 호평을 받으면서 레누는 다시 한 번 작가로서 도약할 기회를 얻었다.



 



고향 마을에서는 여전히 솔라라 형제들이 득세하고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악행은 계속된다. 3권에서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알폰소는 미켈레와 깊은 사이를 맺고 있으며 언행마저 여성처럼 변해간다. 이런저런 일들 속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 다정한 구석이라고는 없었던 어머니는, 죽음에 가까워지고나서야 레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을 고백하고, 레누도 어머니를 향한 깊은 애정을 느꼈다. 솔라라 형제들의 악행을 폭로한 기사 게재로 레누의 입지는 한층 단단해져가고, 레누와 릴라의 어린 시절 한부분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하나의 페이지가 그렇게 닫혀갔다. 그리고 일어나버린 그 일.



 



릴라의 딸 티나가, 사라진다. 아무 징조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자식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실종이 아닐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고,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온갖 상상이 머리속을 침범해 한시도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없다. 그 고통은 부모가 죽어야만 끝이 난다. 어떤 부모가 잊을 수 있을까. 티나의 실종으로 인한 충격은 릴라를 덮치고, 그 일을 계기로 릴라는 무너져간다. 아이들이 자라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고, 주변을 비롯한 자신들마저 노년에 이른, 시간이 이렇게나 흐른 지금까지도.



 



시리즈의 처음부터 릴라의 레누를 향한 감정의 정체가 궁금했다. 레누의 감정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분명 자신보다 뛰어난 릴라를 향한 선망, 질투, 어떻게든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그럴수록 릴라의 영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좌절, 열등감, 우정. 하지만 릴라의 감정은 모호하다. 레누를 향한 마음에 질투가 없었을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레누에게 부러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릴라의 감정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채,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레누를 향한 조롱이나 멸시, 비난으로 대체된다. 어쩌면 릴라 또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붙잡고도 싶고, 떠나보내고도 싶었을 복잡한 심정. 하지만 그 감정에, '우정'이라는 두 글자로 얼버무렸던 감정에 릴라는 잔인한 종지부를 찍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아픈 추억을 글로 써서 발표한 레누에게.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을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또한 1권에서의 서먹함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레누와 릴라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가득차 있다.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만약 그 작품에도 니노같은 넘이 등장한다면, 음, 그것은 글쎄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험한 말을 하도 많이 했더니, 싫은 그 넘이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울 정도. 그렇지만 이러면서도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 구간은 물론 신간이 출간되지는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마성의 작가, 마성의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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