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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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징비록
글쓴이
류성룡 저
서해문집
평균
별점8.8 (157)
初步

임진왜란에 관한 기록은 많이 있다. 우선 정사라 할 수 있는 선조실록이나 선조수정실록에도 실려있고, 유성룡의 징비록, 이순신의 난중일기, 그 밖에도 여러 의병장들이 기술한 문집들이 있다. 그러나 왕조실록에 실려있는 부분은 주로 당파적 입장에서 쓰여져 있다고 볼수 있으며, 이순신이나 여러 의병장들이 쓴 것은 자신의 치른 전투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비록 개인의 문집으로 사후에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은 왕의 지근에서 바라본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 과정에서 경쟁했던 수많은 제후들이 보유하고 있던 무력과 욕망을 대외적으로 분출시키기 위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7년간의 전쟁이 남긴 영향을 보면, 일본과 중국은 왕조가 바뀌었지만, 당시 전쟁의 주무대이었던 한국만은 요지부동 이었다. 일본의 경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중 사망함에 따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했고, 명나라는 전쟁에 따른 국력소모로 결국 청나라에 중국을 넘겨 주는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정권은 붕괴되지 않았다. 그것은 전쟁의 피해가 온전히 피지배층에 돌아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전쟁이 끝나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서애 유성룡은 자신이 몸담았던 조정과 스스로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하며, 임진왜란 전후의 현실인식을 통해 후손에게 값진 경험을 남겨주기 위해 이 책을 지었다. 징비록의 징비란 시경 소비(小毖)편에 나오는 문장 子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뜻이다. 이런 징비록의 구성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정황이 담긴 징비록 상하 2, 7년전쟁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이 담긴 녹후잡기, 서애가 올린 차 및 계사를 모은 근포집, 1592년부터 이듬해까지의 장계를 수록한 진사록, 그리고 서애가 도체찰사로 재임하던 때의 문이류를 모아 놓은 군문등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이중에서 징비록 상하 2권과 녹후잡기를 번역한 것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서애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전인 1586년부터 왜국이 사신을 보내 조선에 요구하는 내용과 조선의 대응에 대하여 적고 있다. 당파적인 관점을 떠나 일어난 일 그대로를 적은 내용을 보면 조선은 그 당시 국제정세에 대해 무지했음을 느낀다. 하긴 중국 명나라에 대한 사대만을 지상의 과제로 삼고, 조선 건국후 200여년 동안 전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리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1592년 왜군의 침략이 시작된 이래 삽시간 만에 부산이 함락되고, 한양까지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들을 막기는커녕 도망치기에 급급한 조선의 관리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내내 할말을 잊게 만든다. 서애는 선조가 한양을 빠져나가는 모습과,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고, 그들이 왜국과 강화조약을 맺을 때까지, 또 조선의 의병과 군졸들이 싸우는 모습에 대하여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모두 조선땅에서 일어난 만큼, 조선 백성들의 고난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대부들의 시각으로 본 단편적인 내용을 제외하고는 빠져 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 확보에 대해서는 자세히 써있는 것을 볼 때, 의도적이었던, 그러지 아니했던 간에 당시 사대부들의 사고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전쟁의 실상이 승패 위주로 기록되어 있고, 백성들의 고초에 대해서는 스쳐 지나가듯이 들은 것 이외에는 기록이 되어있지 않지만, 당시 조정에 몸담고, 전쟁을 자초한 사람의 하나로써 스스로를 반성했다는 점에서 볼 때, 현대에 사는 우리가 징비록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회 또한 새로울 수 밖에 없다. 이 땅에는 징비(懲毖, 子其懲而毖後患) 하여야 할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애는 징비록에서 스스로를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였지만, 조선은 그러하지를 못했다. 그러기에 몇십년 후, 바로 병자호란을 당하여 또 다른 치욕을 맛보게 되며, 백몇십년 후 끝내는 왕조의 멸망을 맞이 한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우리는 많은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어처구니 없고, 말 도안되는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것에 대해 스스로를 징계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을 경계로 삼는 사람조차 없다. 임진왜란 당시의 왕과 조정대신이나, 지금의 그들이나 하등 다를 바가 없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들에게 징비록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마 그들은 읽고도 그 뜻을 알지 못하리란 생각에, 아니 설사 안다 할지라도 외면하리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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