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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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사도세자를 만나다
- 작성일
- 2015.10.22
사도세자를 만나다
인천 부내 5학년 반 이*
요즘 난 ‘비밀의 저택’을 서성이고 있다. 그곳엔 수많은 비밀의 방이 숨어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늘 고민하게 하는 이 ‘비밀의 저택’은 바로 역사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 뒤집히고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 때면 어렵기만 했던 역사의 비밀을 풀 희망이 조금씩 솟는다. 하지만 하나의 실마리가 다 풀리는가 싶으면 또 다른 문제들이 꿈틀거린다. 오늘도 블라인드 쳐진 그 깊고 깊은 미궁 같은 저택에 발을 디딘다. 첫 번째 방은 사도세자가 머무는 방이었다. 뒤주, 소론, 혜경궁 홍씨…? 얼마 전 「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란 재판 형식의 책을 읽었다. 그 후 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풀지 못한 어떤 사건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 책이다.
사도세자는 어릴 때부터 효경을 외우고 동몽선습을 다 익힐 만큼 똘똘한 둘째 아들이었다.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대리청정을 맡고, 책임지기 어려웠던지 점점 자유를 원하고 결국은 노론의 역모로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다. 이 사도세자가 소송을 걸지만 재판에서 진다. 정신적으로 온전했다는 세자의 주장은 근거가 충분치 않았고 정황상 정신질환은 자연스러운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역사를 재판하기는 정말 힘들다. 엎지른 물과 쏟아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듯 지난 역사를 되돌려놓기란 불가능하다. 백제의 칠지도, 서희의 외교담판, 공민왕의 개혁정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노비의 억울함…. 소송마다 판결을 내리는 공정한 판사님이 무척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이번 판결만은 동의할 수 없다. 사도세자는 약 서른 살. 젊은 세자가 그 비좁은 뒤주 안에서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얼마나 무섭고 답답했을까? 사실 난 아직도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면 무섭다. 약 1㎡ 정도의 크기인데도 나는 그 고립감 때문에 무서울 때가 정말 많다. 난 30초 정도만 타면 되지만 사도세자는 8일, 거의 192시간을 갇혀있어야 했다. 사도세자가 가엾었다. 당파싸움의 희생양, 즉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처음엔 소론의 이론을 비판하고 공부하는 이황의 영남학파, 이이의 기호학파가 있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고, 동인은 남인과 북인,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소북이 나중엔 노론과 소론이 되었다. 서인이 소론인 시파와 합쳐지면서 당파싸움이 강렬해졌다. 영조의 이복형인 경종의 뒤를 이어 영조를 왕위로 밀어준 것이 노론인지라 영조는 소론보다 노론을 더 아꼈다. 사도세자가 소론의 뜻을 함께 하니 노론에겐 그가 눈엣가시였던 거다.
이런 당파싸움을 보며 난 3학년 때 친구들을 떠올렸다. 편을 가르고 두 팀 사이의 오해 때문에 한 친구가 무척 고생을 하다가 전학을 간 친구가 기억난다. 그 친구도 뭔가 잘못이 있었겠지만 앞뒤 일을 따지지 않고 의심부터 하다 보니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듯하다.
세자빈인 혜경궁 홍씨도 세자가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까지 저지른다고 영조에게 이르자 세자를 자주 질책한다. 사실 사도세자는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궁녀를 죽이기까지 한다. 자신의 취미인 무예를 위해 무기를 지니고 다녔고, 자유롭게 곳곳을 유람하고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다름 아닌 뒤주였다. 그는 뒤주에서 그렇게 굶어 죽어간 것이다.
사도세자의 말엔 귀를 기울이지 않던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크게 깨닫는다.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 탕평책을 세우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후회한다. 그리고 사도세자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세손, 정조에게 쏟는다. 생각해보니 정조가 나랏일에 열정을 가졌던 건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에서 사도세자는 재판에서 졌지만 분명 억울함은 컸을 것이다. 당쟁이 없었다면 그런 억울함이 없었다면 사도세자의 일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거다. 난 외로움과 억울함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를 위로해주고 싶다. 사도세자처럼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역사 속에 많이 있을 것이다. 왕과 신하들의 말이 법처럼 행해졌던 그 옛날에도 지금처럼 정당한 법이 있었다면 사도세자처럼 뒤주에 갇혀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었을 거다.
내가 ‘비밀의 저택’으로 매일 가야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앞으로는 부당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더 복잡해지고 있는 사회에서 쉽지는 않을 거다. 또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먼저 돌리는 세상이다. 사도세자가 살았던 시대도 결국 네 탓으로 돌린 이유로 사도세자는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본다.
우리는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해야 하지만 법보다 먼저 더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 곧 사람이다. 정말로 정당함과 진실이 마땅히 인정되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도세자도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죽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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